의과대학에서는 정신과학을 배우기 전에 그 기본이 되는 행동과학을 배운다. 행동 과학 과목 중에 가장 재미있는 강의는 아마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일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노라면 성적충동, 공격적 충동, 적개심, 원한, 좌절감 등 여러 요인에서 오는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심해지면 불안을 느끼고 몸과 마음이 괴로워진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갈등상태에 있는 충동들을 타협시키고 내적인 긴장을 완화해서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자아(ego)가 불안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 방법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대표적인 방어기제들로는 의식에서 받아들이기 곤란한 욕망, 충동, 생각들을 무의식에 찍어 눌러 넣는 ‘억압(repression)’이 있다. 또 실연이나 창피당한 기억들을 머리에서 지우려 노력하는 것이 ‘억제(suppression)’이다. 부모, 형, 윗사람이나 주위의 중요인물들의 태도와 행동을 닮는 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한다. 한편, 본능적 욕구나 참아내기 어려운 충동들이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형태로 바뀌어 의식세계로 나가는 것을 ‘승화(sublimation)’라 한다.
이러한 방어기제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동을 옳고 그르다는 한가지 잣대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다.
방어유형 설문지(Defense Style Questionnaire, DSQ) 검사로 개인의 방어유형을 알아볼 수 있다. Bond(1986)에 의해 처음 제작된 이 검사 도구는 방어의 성숙도에 따라서 4가지 방어유형(비적응형, 표상왜곡형, 희생형, 적응형)과 투사 등과 같은 구체적인 방어기제들도 측정할 수 있다(정명원등, 신경정신의학 1993;32: 707-716).
최근의 연구(Nazari A, Political Quarterly 2019;49:535-559)에 따르면 미성숙(immature)하고 신경증적인(neurotic) 방어기제를 가진 정치인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나 국제관계에 대해 높은 위협을 만든다고 하였다. 한편, 그들의 정치적 입지에 대하여 성숙한(mature) 방어기전을 사용하는 정치인들은 더 자신감 있는(confident) 정치행위(political behavior)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평상시와 위기상황에서 어떤 방어기제들을 어느 정도 두드러지게 쓰고 있는지 나부터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 미성숙한 기제를 쓴다면 나는 내 가족, 제자들과 환자들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신보다는 전체사회를 위해 일을 하는 정치인들의 균형 잡힌 정신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방어유형검사’들을 받도록 한다면 세상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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