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의 살림살이가 혼란스럽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혼잡한 등하교, 좁은 교실에서의 수업 그리고 다양한 과외활동 등에서 불의의 감염이 염려되기에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인터넷 기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강의를 학생들은 ‘싸강’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사이버 강의를 축약해 부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데 숨겨진 다른 의미도 있지 않을까? 캠퍼스에서 마음껏 발산돼야 할 젊음의 발랄이 뜻하지 않은 횡액에 의해 절제돼야 하는 것. 아무런 인간적 교류 없이 기계 장치로 전해지는 차가운 수업이 계속돼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인생 절정기인 대학생활이 마구 망가졌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감수는 해야 할지언정 그저 싸가지(?) 없는 상황은 아닐까.
싸강으로 매도됨에도 모든 교수는 나름 최선을 다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필자도 지금까지 수십 개의 동영상을 제작해 왔다. 한 번은 조교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필자의 모든 동영상 첫 마디가 ‘자’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외마디, 자~. 그리하여 필자의 수업은 ‘자’수업이었다.
코로나19로 여러 상념을 가지게 된다. 20여년 교수생활 중 초유의 경험을 하면서 필자의 교수 역(役), 강의 그리고 제자들과의 관계 등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이제까지 필자가 교수됨, 필자가 강의함 그리고 필자가 학생과 관계맺음을 오만하게 생각해 왔었다. 한데 학생이 없으니 교수역도, 강의도, 관계맺음도 없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 사태로 인한 우리 학생들의 비틀거림, 사소한 모든 것에서의 불편, 당연한 것의 박탈 그리하여 너무도 부당한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그 비틀거림, 불편, 박탈, 아픔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극복해야 한다. 하여 이들을 역설적으로 ‘코로나학번’이라 부르고자 한다. 코로나로 인해 이들에게서 느끼는 안쓰러움을 오랫동안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쓰러움이 있기에 반드시 이후에 미처 해주지 못했던 것을 더 많이 해주리라 다짐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동안 이들과 캠퍼스에서, 강의실에서 보다 많은 만남을 가지며, 더 많이 교류하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해야 한다.
이계존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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