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나 직시해야 할 불편한 진실. ‘조선 멸망의 원인’이란 유명한 글이 있다. 만해 한용운과 단재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청나라 사상가 양계초가 1910년에 썼다. 조선이 중국, 러시아, 일본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망했다는 게 요지다. 조선은 양반이 돼야 관리가 될 수 있고, 양반은 무위도식하며 붕당을 만들기 좋아했고, 붕당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겼다. 양반이 아닌 백성은 재산을 보전하기 어렵고, 관리는 백성의 재산을 거둬 3분의 1만 나라에다 조세로 바쳤다. 새로운 지식을 가진 인재는 있으나 입신출세에 정신이 팔려 쇄국을 말하다가 개방으로, 러시아 편, 중국 편, 일본 편으로 변신했다. 집권 세력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한 나라치고 멀쩡한 나라는 없었다. 세계사가 보여준 실패한 국가의 공통점이다. 임진왜란도 부패한 집권 세력이 백성의 혈세로 배를 불리고 국력을 탕진하며 세상 돌아가는데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지금 우리나라 집권 세력의 행태가 그렇다. 100년 전 조선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니, 더 심각하다. 집권 세력은 안으로 자신들의 비리를 감싸고 바깥으로 적에게 아부한다. 더구나 그럴듯한 말로 국민을 속인다.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총살했으나 북한에 책임을 묻기는커녕 김정은을 계몽 군주라 떠받든다. 집권 세력은 조선의 양반처럼 붕당을 만들었다. 좌파 노조와 시민단체가 결탁해 정권을 잡았고 자기들은 비리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건이 그랬고 대통령이 관련된 울산시장 선거부정 사건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검찰개혁이라면서 진실 규명을 방해했고, 경찰, 검찰, 법원을 정권 유지의 도구로 만들었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법처럼 돼 여론을 조작했고 정권에 불리한 집회는 금지하며 언론도 억눌렀다.
집권 세력은 규제와 세금 폭탄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재산권을 침해했다. 국민보다 노조와 시민단체가 우선이다. 민노총이 불법 파업을 벌이고 경찰을 폭행해도, 윤미향 의원이 이끈 시민단체가 위안부 할머니 돕는다고 낸 성금까지 챙겨도 눈 감았다. 노조의 특권을 키우는 노동정책으로 청년은 일할 기회가 없어졌다. 집값만 폭등시킨 부동산정책으로 서민들은 전세마저 구하지 못한다. 재정을 늘리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현혹해 서민의 지갑마저 세금으로 털었으나 국가부채만 급속도로 쌓였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이후 6개월 사이 사태는 더 악화했다. 파업 부추기는 노동법, 기업의 손발을 묶는 상법, 주택거래 막는 임대차법 개정에다 고위공무원 길들이는 공수처법은 시행도 해보기 전에 개악하려 한다.
조선 멸망의 원인은 그대로 살아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고약하다. 집권 세력이 이미 실패했고 회생할 기미도 없는 사회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80년대 운동권으로 대학 다닐 때부터 북한을 추종해 반미(反美)활동을 벌였고 졸업하고는 제대로 직장생활도 해보지 않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종주국 소련이 붕괴했고 중국도 자본주의로 바뀌었으나 이들은 세상 변화와 담쌓았다. 시민단체를 현대판 붕당으로 만들고 운동권일 때 써먹던 선전ㆍ선동으로 권력을 잡아 전리품을 나눴다. 집권 세력을 못 바꾸면 대한민국도 조선처럼 된다. 진짜 적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다. 다행히 조선과 대한민국에는 큰 차이가 있다. 조선이 망할 때 교육은 양반만 누리는 특권이었으나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이 가진 기본권리다. 그 힘으로 깨어나 집권 세력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건 역사의 명령이고 국민의 의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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