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술자리에서 진 빚, 이후 갚아야 할 빚

몇 해 전 한 경험이 불쑥 떠올랐다. 마누라와 지동시장 마실, 올망졸망 순대집들이 정겨웠다. 단골집에 자리 잡고 곱창볶음과 소주를 시켰다. 안주 마련을 기다리는 중, 한 노부부가 옆자리에 앉게 됐다. 등산 후 저녁인 듯 노부부도 국밥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투박한 집이라 식탁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볶음이 요란하게 끊고 있던 찰나, 옆자리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하셨다. ‘국물이 우리 쪽으로 튈까 염려된다’ 다소 시비조의 내용이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은 연신 익살스러웠다. 철판 위치를 옮기려던 필자를 제지하며 할아버지는 ‘괜한 소리를 했다면 그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잠시 서먹한 가운데 왕후의 소주 그리고 시장통 곱창볶음으로 우리의 만찬이 마련됐다. 마누라는 약간의 볶음을 옆자리 노부부에게 건네면서 한 마디, ‘어르신! 양은 적지만 안주 삼아 드시라’고 했다. 마누라의 호의는 이내 한잔 술로 화답됐다. ‘국밥을 나눠줄 수는 없고, 소주 한 잔 주겠다’고 했다. 또 한 잔을 받은 필자는 ‘그냥 말 수 없다’며 할아버지에게 다시 한 잔을 드렸다. 이렇게 노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서로의 얘기에 집중하며 시장통에서의 우연한 한 잔을 즐겼다.

잠시 후 할머니가 우리 쪽으로 다시 오시더니 한마디를 건네셨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두 테이블 술값 모두 계산했다’라고 하셔 필자는 놀라며 즉시 노부부를 따라나섰다. ‘계산을 한다면 우리가 해야지, 이건 아니다’라고 했다. 한데 할아버지가 단호한 한마디를 하셨다. ‘우연히 만난 옆자리 젊은 친구에게 한 잔 사는 것이 즐거웠다’고 하신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부담된다면 오늘의 채무를 더 젊은 누군가에게 이후 갚으라’고 했다.

노부부의 후의를 통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세대 간 불편이 일순 해소됨도 느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이번 주말 지동시장 그 순대집으로 가서 젊은 누군가에게 빤한 수작해 질펀한 한 잔을 마시고 그 술값을 대신 내줘야겠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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