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100권 읽기의 미래

오드리 헵번이 출연했던 영화 <사브리나>는 제목이 여주인공 이름이다. 사브리나의 아버지 페어차일드는 부잣집 운전기사인데 그는 책 읽기를 즐긴다. 아내도 없이 기른 외동딸 사브리나가 요리를 배우기 위해 파리로 떠났을 때도 그의 독서는 가장 큰 위로가 아니었을까.

독서하지 않으면 졸업하기 어려운 학교가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은 인문 고전도서 100권을 읽어야 졸업할 수 있는 학교로 유명한데 1929년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허킨스의 이른바 ‘시카고 플랜’이다. 시카고 플랜은 ‘존 스튜어트 밀’의 독서법에 따라 철학을 비롯해 세계의 위대한 고전들을 충분히 완전하게 소화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상상만으로도 학생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그래도 졸업을 위해 목표 도서를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문 고전 저자들의 사고방식을 학습하게 됐다. 그 결과로 시카고 대학은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명문대학의 반열에 들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년부터 카이스트가 우주, 자연, 인간, 사회, 예술, 기술 등에 관한 도서 총 100권을 읽어야 졸업할 수 있는 융합인재학부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학부 지정 도서 70권, 학생 자율 선정 도서 30권을 읽고 서평을 제출해야 하는데 원고지 50장 분량의 글쓰기 서평이나 2시간짜리 영상에 담은 서평이다. 충분히 소화해서 타인에게 설명하고 토론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이해하는 독서가 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카이스트의 이런 혁신적 대학교육의 방식은 학생은 물론 교수에게도 큰 도전이다. 학생들은 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공부했던 방식을 완전히 탈피해서 두뇌를 새롭게 써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다. 책 읽고 글쓰기는 익숙한 공부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대한 분량의 학생 과제물을 평가해야 하는 교수들 역시 이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난 물리적 정신적 무장이 필요할 것이다.

졸업 평점, 수치화된 점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런 방식에 대해 우려스러운 점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 그리고 점차 많은 대학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읽고 사유하는 과정이 턱없이 부족한 오늘날 대학교육이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세계를 준비하는 인재를 이끄는 방식으로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손에 놓은 학생, 일반인들이 너무나 많다. 책보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정말 많은 세상을 탓해야 하지만, 여전히 책이 주는 지혜와 통찰을 간과할 수 없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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