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환호와 실망의 갈림길

태평양을 가로질러 시차가 있으므로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국보다 하루 늦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 예측이 쉽지 않았던 이번 미 대선이 미국에서는 오늘 진행된다. 대선 후보의 관점에서는 당내 경선까지 감안하면 1년이 넘는 시간을 전력투구한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행해지는 가장 신랄하면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일이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아닌가. 민주주의가 낳은 특권이자 소란이며, 축제이자 내전이다.

트럼프는 재선이 되어도 그대로 45대 대통령이다. 부친이 단임 대통령(One-termer) 그룹에 들어가지 않도록 영애인 이방카는 별도 유세까지 다니며 열심히 선거캠페인을 누볐다. 만약 11월 3일의 선거에서 패배하여 아버지가 백악관을 떠나더라도 언젠가 최초의 부녀 대통령의 기록에 도전할 의욕을 암시하고 있다. 세속적 영역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모든 것을 이룬 트럼프에게 마지막 남은 기대일 것이다.

질(Jill) 바이든은 남편이 제46대 미합중국 대통령직에 도전하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등을 밀고, 조언하고, 함께 싸워온 여성이다. 워싱턴의 노회한 정치인인 배우자가 가슴 속에 새겨진 젊은 정열이 시들지 않도록 독려하면서 마라톤의 마지막 지점까지 완주케 했다. 교육학에 애정과 조예가 깊은 “질 바이든”이 차기 백악관 안주인이 될지는 투표에 관한 잡음이 없으면 바로 결정된다.

조셉 바이든은 19년이나 젊은 연배의 대통령 오바마 곁에서 8년이나 부통령의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희망을 저버릴 수 없어 인내의 시간을 견디어 온 윌밍턴의 사나이다. 지금도 그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주의 윌밍턴에는 연방의회 소재지인 워싱턴DC로 가는 기차 암트랙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상원에서 보낸 36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통근기차 한 켠에서, 자동차 사고로 먼저 떠난 어린 딸과 첫 배우자를 떠올리며,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지우고 써야 할 새 일기를 쓰면서 집념의 길을 걸어온 바이든이다.

월터 먼데일과 함께 역대 최고의 부통령으로 평가받아온 바이든이 필생의 염원이던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유권자들의 결정은 끝이 났고 이제 개표만 남아 있다. 이번에 승리하면 그는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으로서 내년 1월 취임하게 된다. 패배해도 바이든은 승자이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이다. 안일한 생각을 떨치고 가슴 뛰는 일에 매진하는 한 사무엘 울만의 표현대로 여든이 다 되어도 푸른 청춘이다. 바이든 후보의 배우자가 그렇게 느끼고, 조(Joe) 할아버지로 부르는 손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온 윌밍턴 시민들도 영원한 승자로 바이든을 기억할 것이다.

격전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환호와 실망의 교차로에 선 대선 무대 위의 두 후보를 바라보면서,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쌓여 온 격한 감정을 걷어내고 결과에 승복하면서 다시 전진하는 미국을 희구할 것이다. 개표 시비로 얼룩졌던 2000년 대선의 반복을 유권자들이 다시 보고 싶어할 리는 없다. 초유의 코로나 위기 극복과 경제 활력 회복, 인종 갈등 치유, 중국과의 새로운 협력관계 설정과 한반도의 비핵화 진전 등 산적한 국내외 난제들이 대선 승자를 기다리고 있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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