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팬데믹이 몰고 온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널이기에 그 시작의 당혹감과 종착에 대한 무지함으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이에 그 터널을 지나는 방법 중 하나로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 보수를 넘나든다. 진보 측은 ‘사회권’ 보장 차원에서 접근한다. 전통적 복지시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양극화 해결을 위한 합리적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보수 측은 제도가 간단하고 비용이 절감된다는 면에서 복지행정 효율화에 주목한다.
이에 비해 기본소득제를 반대하는 진영은 현 사회보장체제의 안정과 향후 재정부담을 논거로 삼는다.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로 기존 복지제도 감축이 불가피해져 빈곤층의 삶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사실 사회복지는 산업혁명 초기과정에서 생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 수단으로 등장했다. ‘빈곤’이라는 구사회적 위험에 맞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 혁명은 기존 산업혁명과는 다른 차원의 혁명이다. 양극화 심화, 고용 절벽같은 사회문제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덮쳤다. 세계경제가 마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사회안전망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바로 ‘신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본소득의 성공은 우선 기존 복지체제에 대한 재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선 주택자금, 기초연금, 아동수당, 청년수당, 실업수당, 근로장려세제, 자녀장학금 등을 통합해 재원을 마련해야한다. 여기에 기존 조세 감면제도의 전면적 개편으로 효율성은 물론 소득재분배 기능 역시 크게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는 개혁이 어렵다.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안 된다.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이 이슈가 ‘그들만의 리그’로 자리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은 권리이자 인권 회복이 주 목적이다. 안 되는 ‘이유’보다 될 수 있는 ‘방법’에 우선하자. 증세나 다른 복지와 통폐합 가능성을 열어 놓고 치밀하게 그 가능성을 따지는 게 중요하다.
기본소득은 코로나 시대 고통분담과 시민적 연대의 길이 될 수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한 번 도약의 시기를 놓치면 향후 오래 침체와 낙오의 길을 가야 한다. 시기상조의 염려보다 실기추회의 우를 범하지 말자.
유문무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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