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 환자가 들어오면 수술대에 눕히고 혈압계를 팔에 감고, 가슴에 심전도 전극을 붙이고 손가락에 맥박산소측정기(pulse oximeter)를 꽂는다. 이들은 환자의 활력징후(vital sign)를 감시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장비이다. 국소마취로 시행하는 간단한 시술이라도 맥박산소측정기만은 꼭 부착하고 감시한다.
이 기기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손끝에 대어 말초혈액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장치이다. 두 개의 광원으로부터 발생한 적외선(660nm)과 자외선(940nm)을 손가락의 가는 동맥에 통과시켰을 때 흡수한 빛의 비율을 센서가 측정해 혈관 내 산화헤모글로빈과 헤모글로빈의 흡광도의 차이를 나타낸다.
내가 인턴 때에는 맥박산소측정기가 없었다. 미국에서도 1987년에 전신마취로 수술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술실에서의 사용을 시작으로 회복실, 중환자실로 그 사용이 급속히 늘었다. 특히 신생아에서 피를 뽑지 않고도 산소포화도를 보여주는 이 장비는 신생아실의 필수품이 됐다.
연구자들은 혈액이 붉은빛과 적외선을 다르게 흡수하는 차이점으로 산소측정기를 개발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노이즈(잡음)를 처리하지 못했기에, 부정확하고도 불편했다. 노이즈를 없앰으로써 정확하고 간편하게 만든 장비를 처음으로 개발한 사람이 일본 니가타대학을 졸업한 다쿠오 아오야기(Takuo Aoyagi)이다. 의료장비 회사 니혼코덴(Nihon Khoden)에 근무하던 그는 1972년에 이 기계를 발명해 회사는 1975년에 특허를 신청해 1979년 승인됐다. 1975년 외과의사 나까지마(Susumu Nakajima)가 처음으로 환자에게 적용해 이를 학계에 보고했다. 요사이는 인터넷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이 유용한 맥박산소측정기를 연구개발한 아오야기가 2020년 4월 타계했다.
나는 그가 졸업한 대학을 방문해 강의한 적이 있었다. 공과대학을 포함한 본교와 병원을 포함한 의과대학이 같은 캠퍼스에 있었으며, 당시는 의과대학 교수가 총장을 맡고 있었다. 강풍과 폭설로 비행기가 니가타 공항에 착륙할 수 없어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 기차를 타고 니가타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 즈음 터널들을 통과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고 시작하는 소설이 생각났다. 다음에 니가타에 다시 갈 기회가 있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3년간 머물며 ‘설국’을 썼다는 다카한 온천여관뿐 아니라 훌륭한 발명가 아오야기의 자취도 살펴보고 싶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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