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김정은의 ‘적자생존’

“닭알(달걀)에도 사상을 재우면(주입하면) 바위를 깰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명언(名言) 중의 명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소개한 김정은의 말이다. 북한 간부들은 ‘김정은의 명언’이 수록된 명언집을 성경책처럼 항시 휴대하면서 외우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을 우상화할 목적으로 2015년에 이 명언집을 출간했다. 책자에는 북한의 간부들이 따라야 할 행동지침과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이 담겨 있다. 북한 간부들은 회의석상에서 건성으로 손뼉을 치거나 졸기만 해도 처형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은 김정은의 서슬 퍼런 ‘공포정치’ 아래서 ‘적자생존(適者生存)’ 하려고 김정은의 명언을 암송하고 있다. 김정은이 주재하는 회의에서나 김정은을 수행하는 모든 간부는 숨죽이고 김정은의 말을 받아 적는다. 그러다 보니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평양판 ‘적자생존’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생겨났다. 김정은의 말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북한 간부들에게 김정은의 ‘말씀은 곧 생명’인 것이다.

북한은 간부들에게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명언 1’이라는 명언집을 만들어 강제로 학습시키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도 구호성 명언이 있었다. 김일성 통치 시기에는 경제건설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이나 ‘새벽별 보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김정일 통치 시기에는 고난의 행군 기간 아사자가 속출하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부드러운 명언도 등장했다.

그러나 김정은 명언집에는 직설적이며 살벌한 단어와 강력한 문장이 많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부족한 김정은이 공포통치로 강력한 군주 및 사이비 교주가 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신이자 절대 군주인 수령의 말은 종교적 교리이고 어명이다. 이를 위해 노동당에 전담 부서를 두고 명언을 창작하며 수시로 명언 공모전이 열린다.

그러나 간부들의 행동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살아남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티머 쿠란(Timur Kuran) 교수는 ‘속으로는 진실을, 겉으로는 거짓을(Private Truths, Public Lies)’이라는 그의 명저에서 이런 현상을 ‘선호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 이론’으로 설명했다. 독재체제하에서는 ‘적자생존’ 하려고 속으로 진심을 감추고 겉으로는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제재와 수해와 코로나의 3중고의 늪으로 깊이 빠져드는 북한에서 간부들이 언제까지 김정은의 명언을 받아적는 적자생존이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언제가 김정은의 ‘명언(名言)’이 망언(妄言)’이 돼 ‘적자생존’이 ‘엎자생존’으로 바뀔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호 둘하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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