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사례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교훈을 준다. 독일과 우리의 상황이 유사해서가 아니라, 차이점에 대한 인식도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동독이 서독의 체제로 편입된 ‘흡수통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의 흡수통일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반도가 처한 국제정치적 환경은 독일과는 달라서 흡수통일이 실현될 가능성도 작지만,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도 급진적 통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통일 당시 동서독의 경제력 격차가 6배 정도였는데, 현재 남북한의 1인당 GDP 격차는 25배 이상이며 국가 총생산 규모는 5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만약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통일돼 북한 주민의 소득보전과 복지를 위해 남한이 비용을 투입한다면 우리도 힘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오랜 기간 적대적 대립 상태가 지속되면서 사회적·문화적 격차가 심화돼 남북한 사회통합도 단기간에 진행하기는 어렵다. 예멘의 통일이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 사례를 비춰보면, 한반도의 급진적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독일 같은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통일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점진적으로 상호보완적 협력을 추진하면서 남북한의 격차를 완화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적 협력에 집중하고 정치적 통일은 미래 세대가 결정하도록 유보해 두어도 좋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ㆍ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이 없고 평화를 추구하며 함께 잘 살고자 한다. 평화를 통해 남북 상생의 길을 찾아내고, 통일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사이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급진적 통일을 추진하기보다 우선 평화를 강조한다고 해서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화해협력 단계를 거쳐 남북연합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완전한 통일을 지향한다. 이 과정을 점진적으로 진행한다면 사실상 대부분 단계에서는 통일을 말하기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남북연합’도 정치적 통합보다는 ‘경제공동체’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각 국가별로 주권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유대관계를 심화시킨 사례이다. 한반도 경제공동체도 독일통일보다는 유럽연합의 모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남북이 점진적으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을 추구한다면, 급진적 독일통일 과정에서 발생했던 문제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통일’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 우리도 성급하게 정치적 통일을 내세우기보다 경제적 교류·협력을 추진하면서 한반도 평화경제를 실현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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