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발틱해에서 지다

한겨울의 바다는 더없이 을씨년스럽다. 발틱해의 한가운데 ‘라트비아’란 나라가 있고, 검푸른 바다를 낀 길고 긴 해변 중간에 ‘유르말라’란 휴양도시가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의 불청객이 우리 모두에게 우울과 좌절을 안겨주는 이 시기에 한국인 영화감독이 유르말라에서 갑자기 생을 마감했다. 살아서 명암이 뚜렷하였던 그는 이제 밤하늘의 별빛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반짝거릴 수 있을까.

자신의 이름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그 감독은 새로운 빛을 찾기 위해 그곳에 갔을까.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창의성이 돋보였던 영화감독이건만 예견치 못한 시나리오에 좌절하였을 것이다. 복선과 반전의 묘미를 터득하였던 감독에게 낯선 땅에서의 허무한 죽음은 각본의 일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팬데믹과 함께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의 세계로 진입하는 시나리오를 미리 읽었을 리가 없다.

중년의 인생 후반부에서 재도전의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발틱해 인근에서 새로운 빛을 찾았던 한 남자가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세계 영화계에서 이룬 성취를 이어가기 위해 주야로 고심하던 한 영화인은 교훈 하나를 분명하게 던지며 유성처럼 사라지고 있다.

공명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누구나 전등의 불빛처럼 밝은 빛으로 남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빛은 고매한 인격의 힘이 갓으로 씌워질 때 더욱 환하게 발산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개인적 능력의 가치를 영속시켜 준다. 명예, 영광, 성취에서 발아하는 화려한 빛 이전에 주변의 사람들을 따스하게 비추는 소박한 빛이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 어디서 인생이 끝날지 모른다. 코로나가 만연하는 이 시대는 누구의 삶도 확실히 보장하지 않는다. 지근거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인격체로 다가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평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품성이 아로새겨진 인간관계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주변을 은은하게 비추는 낮은 조도의 가녀린 빛이 더 절실한 때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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