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예상보다 너무 오래간다. 언제 끝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으니 더 답답하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거라는 기대는 점점 무너져 간다. 이제 코로나 이후 변화된 일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사실 마스크를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어려운 현실이다.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인류의 잘못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문별한 탐욕과 과다한 소비가 부른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이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의 배경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고통이 마치 형벌처럼 느껴진다.
이런 위기에서도 우리경제가, 우리생활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신기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4인 이상이 모일 수 없고, 수많은 업종의 업소가 영업제한을 받는 데 경제지표는 의외로 나쁘지가 않다. 수십조에 달하는 재난지원금을 풀어서일까?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의 영업이 호조를 보여서일까? 상황이 안좋은대로 승승장구하는 업종들이 생겨나서일까? 구체적인 분석자료들이 나오고 있으니 참고하면 되겠지만, 결론은 하나다. 우리가 잘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할 일을 잘 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칭찬과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줄 때, 연대와 협력이 살아있고, 미래의 희망이 보인다. 국가차원에서 4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고, 지자체별로 별도의 지원책을 시행해 왔다. 많든 적든 재난지원금은 현실을 이겨내는 버팀목으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4차 지원금은 업종을 선별하는 대신 금액이 커져서 해당자들에게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에서 소외된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 종교인과 문화예술인 등이다. 딱히 어디에 속하는 업종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객관적인 수입기준이 잘 드러나지도 않는 경우들이다. 종교인의 경우 특정모임 때문에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종교인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양한 삶의 길을 간다. 종교인도 예술인도 특수한 집단이 아니라 우리 시민이고 이웃이고 친구이다. 종교도 예술도 직업이고, 삶이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고, 생활비에 쪼달릴 수 있다. 국가가 나서지 못하더라도, 우리지역의 종교인이나 예술인 같은 분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자체마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재난지원금에 더 많은 은혜와 자비를 실어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울러 재난지원금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국가지원 외 지자체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분야는 없는지, 한 번 더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박시선 여주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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