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의리와 인정의 조직문화

“교전이 끝나고 돌아와 비행기에서 내린 편대장은 귀환을 보고하고는 쓰러졌다. 일으키려 했지만 숨을 거둔 뒤였고, 몸은 차가왔으며, 가슴에 탄환이 박혀 있었다. 보고한 것은 그의 혼이었다.” 2차대전 중 일본방송이 전한 ‘어느 조종사의 죽음’이다. 일본군은 이렇게 가미카제(神風) 신화를 만들어냈다(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도요토미는 1590년 일본을 통일하여 농민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사무라이에게만 칼을 찰 수 있도록 하니, 무사계급이 200만명에 달했다. 그가 죽은 뒤 도쿠가와가 다시 통일했을 때(1603) 50만명의 무사들이 실직하여 대부분 상인계급으로 흡수되고, 나머지는 로닌(浪人)이 되어, 쇼군(將軍) 밑에서 전설적인 범죄조직을 형성했다. 이것이 야쿠자의 전신인 ‘하타모토 야코’이다. 이들은 쇼군의 권력을 업고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 이들은 조직의 보호와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 은혜를 갚고, 치욕보다는 죽음을 택하며, 목숨을 바쳐 의리를 지킨다는 규율을 만들었다. 야쿠자의 신조인 ‘기리(義理)’와 ‘닌조(人情)’가 조직문화가 된 것이다.

일본 군인정신은 야쿠자의 조직문화를 승화시킨 것이다. 야쿠자는 1700년대 중반부터 도박꾼들과 행상인 집단이 계보를 형성하며 만들었으며 보복과 테러 행위를 자행했다. 일본인의 무사도는 후세의 작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며, 사회적 정의와는 관련이 없다. 야쿠자가 정의로 믿고 있었던 것은 두목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었다.

일본의 자살 문화는 전국시대 무사의 할복과 2차대전 당시 자살특공대에서 보듯이 일종의 전통이다. 정신적 생존의 중심부 하라(腹)를 갈라 보여 죄를 씻고 명예를 지키고 이름을 깨끗이 하고자 하였다. 일본지식층의 자살은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풍조에서 유발되는 행동으로 자신의 비위 사실이 드러날 경우 사법적 판단에 앞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이기섭 2005).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의 자살은 결백을 증명하려 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살한 사람에게 끊임없는 연민을 보내며, 죽음 앞에서 죄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한 히틀러나, 자식들을 독극물로 살해하고 자살한 괴벨스를 보면 모든 자살이 동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이용범, 2000).

일본에서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사회지식층의 자살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게 되었다. 장점은 배우고 받아들여야겠지만, 사무라이의 할복풍습, 야쿠자의 신조까지 받아들여 미화시키는 것은 올바른 극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의리와 인정처럼 좋은 가치관은 언제나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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