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월 노동당 8차 당 대회에서 ‘철도 현대화’ 계획을 언급했다. 남북관계 교착 국면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북한은 중국과 협력해 평양-신의주 고속철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이미 2015년에 북·중 접경지역 도시인 단둥(丹東)과 훈춘(琿春)까지 고속철을 개통한 바 있다. 북한에 고속철이 건설된다면 베이징에서 신의주까지는 4시간, 평양까지는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철도 연결에 합의했지만, 기초조사만을 진행한 후 교류가 중단된 상태다. 북미 관계가 교착된 상태에서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철도 연결을 시작하지 못한다는 것이 마치 상식과도 같이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야말로 70년간의 분단을 통해 우리 안에 자리 잡은 패배의식과 고정관념이 아닐까.
비상업적 공공 인프라인 철도는 북한의 군사력 증대와는 무관하게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기반시설이다. 따라서 더 적극적으로 유엔을 설득해서 철도에 대해서는 대북 경제제재의 예외조치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혼자서 추진하기 어렵다면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차원에서 추진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연장해 동해안을 따라 부산항까지 잇는 한반도 철도 연결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북한과는 이미 내륙철도 현대화 사업을 협의한 바도 있다. 일본은 북일 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전제로 전쟁배상금을 활용해 원산과 같은 항만 도시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년에는 북한이 일본 측에 평양~원산 구간 신칸센 건설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북한 고속철도 구축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고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한일 해저터널 구상이 언급되기도 했다.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는 한반도의 해양 네트워크가 확장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전략적으로 우리 입장에서 우선 시급한 것은 대륙철도와의 연결이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지리경제학적 경쟁력을 되살리려면 북한을 통과하는 대륙 네트워크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
한편으론 미·중 간 갈등과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러시아와 보다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미국이 남북철도 연결에 부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은 지속돼야 함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의 인프라 구축 및 경제개발 프로젝트에 미국과 일본도 적극 참여시켜, 한반도를 중심으로 평화적 교류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원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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