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다시 부르는 한산도가

420여년 전 조선은 물밀듯 침범한 왜군으로 인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 조정은 무능의 대명사인 선조치하에서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일본의 침략 위협은 당리당략에 따라 무시했고 중국에 대해선 사대의존적이었다. 주적이 없다 보니 국방은 소홀해지고 훈련조차 받지 않아 관군은 오합지졸이었다. 결국 조선의 강토와 백성은 왜군에게 순식간에 짓밟히고 말았다.

다만 해상과 인접한 육지는 예외였다. 3도수군통제사인 명장 이순신이 지켰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거북선과 판옥선에 함포(승자총통, 지자총통)를 탑재한 160여척의 무적함대로 바다를 장악했다. 왜선은 1천여척에 조총으로 무장했으나 족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간교한 왜는 우매한 선조를 부추겨 이순신을 죽이려 했다. 함정을 파놓고 거짓정보를 흘려 왕명으로 이순신의 출동을 유인했다. 하지만 적의 함정을 간파한 이순신은 출전하지 않았다. 선조는 왕명을 어겼다고 이순신을 하옥하고 모진 고문을 했다. 후임인 원균은 싸울 줄 몰라 왜군의 함정인 칠천량으로 출동한 탓에 이순신의 무적함대는 순식간에 궤멸당했다.

이제 조선 수군은 배설이 도주시킨 12척이 전부였다.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3도수군통제사로 기용은 했으나 수군을 해체해 육군에 합류하라는 교지를 내린다. 그러나 이순신은 “지금 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남아 있습니다”라는 비장한 장계를 올리며 한산도가를 읊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나라 위한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줄기 피리 소리는 나의 창자를 끊는구나.”

이순신은 12척(후에 13척)으로도 왜선 1천척을 이길 지략과 담력이 있었다. 정읍현감에서 진도군수로, 다시 전라좌수사로 부임 시 건넜던 울돌목(명량)이 한 명으로 족히 천명도 막는 천혜의 장소임을 보는 군사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까막눈인 선조가 수군을 해체하라고 하니 모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이순신의 창자는 끊어지는 듯했다.

지난 1월, 10년간의 과도기를 끝내고 ‘당총비서’에 등극한 ‘혁명무력사령관’ 김정은은 9ㆍ19 군사합의로 국군의 눈과 귀와 손발을 이미 묶어놓고, 전술핵까지 만들어 남한을 단번에 쓸어버리라는 교지를 하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핵을 억제할 최고 장치인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건과 능력이 갖춰지지 못했음에도 빨리 가져오려 한다. 대신들과 여당도 김정은에게 여전히 진정한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한다. 코로나에 살기 급급한 국민은 북핵위협에 천하태평이다. 이순신이 피를 토하며 다시 부르는 한산도가가 귓가에 점점 가까이 들리는 아침이다.

김기호 둘하나연구소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