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섬나라다. 신대륙 아메리카는 인류의 문명이 부흥했던 유라시아 대륙과 지리적으로 동떨어진 거대한 섬이다. 북미대륙의 이웃나라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적도를 넘어 기후대가 바뀌는 남반구에 위치한 남미대륙은 물리적으로도 이동이 쉽지 않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을 활용해 미국 본토는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주변 국가들은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됐다.
그러나 문제는 유라시아의 대륙세력이다. 대서양 건너편에는 유럽이 있고 태평양 건너편에는 아시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패권을 장악한 미국의 강력한 경쟁상대는 소련이었다. 소련의 붕괴로 미소 냉전이 끝나자 한동안 평화롭게 대륙과 해양의 밀월이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으로 위협을 느낀 미국이 전략경쟁을 선포함으로써 세계는 다시 ‘신냉전’에 돌입했다.
해양세력 미국은 대륙세력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운다.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는 해양세력의 결속을 위한 것으로 사실상 섬나라들의 연합이다. 일본과 호주는 실제로 섬이며, 히말라야 산맥으로 인해 대륙으로부터 단절된 인도는 지정학적인 섬이다. 지리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해양세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대(對)중국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은 한국까지 포함시키기를 원한다. 이미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대립으로 70년간 분단됐고 한국은 ‘섬 아닌 섬’으로 전락했다. 이제 한국을 대륙으로부터 떼어 놓아 해양세력의 영향권 아래에 두고자 한다.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점점 어려워진다. 남북한의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적 교류협력이 확대되면, 중국의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균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반도에는 지정학적 원심력이 작용한다. 대륙은 북한을, 해양은 남한을 끌어당긴다. 대륙과 해양의 충돌 접점에 놓여 이와 같은 지정학적 운명을 가진 한반도의 미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대륙과 해양이 갈라서는 지정학적 관점을 탈피해야만 한다. 지정학적 충돌에서는 배타적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지경학적(geo-economic) 연결에서는 연계와 협력이 가능하다. 해양세력인 미국과 일본을 북한 개발에 끌어들여 경제적으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지경학적 연결을 시도해 보자. 예를 들어 원산 관광지와 단천 광물자원 개발 등 해양세력이 관심을 가질만한 북한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다. 북미관계 교착상태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미국의 전략상 불리하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 대립과 충돌을 지경학적 연결과 협력으로 전환해서 한반도를 대륙과 해양이 평화적으로 교류하는 공간으로 만들자.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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