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전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 남자가 악기상에게 자신이 쓰던 트럼펫을 팔며 마지막으로 연주한다. 악기상은 그 곡을 들은 적이 있다며 중고 피아노 속에서 발견한 레코드원판을 꺼내서 틀었더니 같은 곡조의 피아노연주가 재생되었다. 이 곡의 작곡자를 묻는 악기상에게 그는 사연을 털어놓는다.
이민자들을 태우며 유럽과 미국을 오가던 여객선에서 한 화부가 피아노 위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발견하여 키웠다. 그 해가 1900년이라 그는 ‘1900’으로 불렸다. 몰래 피아노를 치던 어린이를 선장이 발견하여, 배의 피아노 연주자로 지낸다. 그는 한 번 들은 곡은 그대로 연주하고,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그림을 그리듯 연주하였다. 레코드의 곡도 녹음 중 한 눈에 반한 창 밖의 여인을 보며 연주한 자작곡이었다. ‘노베첸토(Novecento)’라는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이 피아니스트는 배에서 태어나 배가 폭파되어 수장될 때까지 배를 떠나지 않았다.
나도 비슷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는 의과대학 졸업부터 사망 하루 전까지 해부실습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1926년에 태어나 1953년에 서울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의학교육자로서 ‘시체실’ 옆방에 기거하며, 시신의 뼈를 추려 표본을 만들고, 조직표본을 만들어 전쟁 후 후학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1979년 썰렁하고 추웠던 실습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하루 4시간씩 주 3회를 서서 돌아다녔다. 도록에 그려져 있지 않은 구조물도 그의 머리에는 3차원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물어보면, 그는 직접 해부하여 그 구조물을 찾아 보여주며, 그 기능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대답하면 또 질문이 날아와 “왜 의사가 되려는가?”하는 화두를 들어야 그날의 대화가 끝났다. 그렇게 학기를 마치고 진급하고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전공과를 정해야 할 때 그를 찾아갔다. “자네는 해부를 하지 말게. 성형외과를 하게나”하고 석사학위 지도를 맡아주셨다. 그의 부음을 들은 것은 88올림픽이 있었던 해 수술실에서였다. 평생 결강을 해본 적이 없던 그는 머리가 아파 수업 중에 강의를 중단하고 귀가하여 다음날 작고하였다.
그의 사망 몇 년 후 물려받은 고서들은 지금도 나의 연구에 참고문헌으로 인용되곤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역사문화관을 세울 때 그가 수작업으로 쓰고 그린 해부학교재들과 육필 원고들을 기증하여, 전시회에 그가 미네소타대학에서 받은 학위논문의 필사 원본이 전시되었다.
사람은 가도 그의 업적은 남는다. 그가 사랑한 제자의 논문이 3천300회 인용되었고, 제자도 그의 제자를 남기니, 인생은 짧지만 인술은 길다. 연주자는 떠나도 음악은 영원히 남는 것처럼.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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