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시위에 ‘미얀마를 도와주세요’라는 한글 피켓이 등장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공공외교를 평가할 계기가 됐다. 한글 피켓은 태국의 민주화 운동과 아르메니아 평화운동에도 이미 등장했는데, 한국의 아이돌 팬클럽의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른 한편, 우리의 1987년 민주항쟁과 2017년 촛불혁명의 성공을 미얀마 시민들도 스스로 이루고 싶은 간절함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군부독재의 벽은 생각보다 견고하다. 미얀마 군부는 민주주의 핵심인 삼권분립 원칙을 무력화시켜 입법·행정·사법부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 타트마도우(Tatmadaw)라는 미얀마 군부는 국내 133개 이상의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해 국가 경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60년간 부당한 재산축적으로 권력을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민주주의를 견인할 중산층과 시민사회의 성장을 막아 정치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2020년 11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상하 양원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자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은 군부 집권에 위협으로 판단하고 쿠데타를 통해 선거 결과를 무력화했다. 미얀마의 시민들이 쿠데타에 저항하자 군부는 무고한 시민을 조준사격으로 살해하며 유혈 진압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쿠데타 초기부터 미얀마 군부에 경고와 함께 전면적 제재를 위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군부와 시위대를 향해 ‘냉정과 자제’를 요구하는 미온적인 태도로 미얀마 시민의 반중 정서를 악화시켰지만, ‘아세안에 대한 내정 불간섭 원칙’과 ‘정세 안정에 역할 수행’이라는 원칙만 반복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처럼 21세기 세계질서는 ‘민주주의 가치’를 기준으로 동맹의 진영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세계질서의 분수령이 될 것 같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자 우리 정부는 우선 최루탄과 같은 군사·치안 및 전략 물자 수출 중단, 군과 경찰의 인사교류와 정례협의 중단, 그리고 우정의 다리 건설과 같은 공적개발원조의 재검토를 발표하면서 미얀마 군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공공외교의 목표를 ‘주요국’에서 모범이 되는 ‘선도국’으로 상향 조정했다. 우리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인도주의 위기에 적절한 대응을 통해 ‘능력’과 ‘의지’를 보여주며 관련국의 지지를 얻고 외교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모범적인 대한민국 공공외교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제도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민주주의 공고화는 독재자를 타도의 대상으로 하는 ‘저항 민주주의’에서 시민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가 되는 ‘실천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실천민주주의는 일반시민과 함께 저소득층, 장애인, 북한 이탈주민, 결혼이주민, 이민노동자, 그리고 성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소외계층이 정치적 권리, 시민의 자유, 그리고 경제와 분배의 정의를 동등하게 보장받는 사회를 말한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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