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일본 해부학, 한국 해부학

내가 근무하는 의과대학에서는 이번 학기의 교육과정을 온라인강의로 진행하고 있다. 예외로 해부학실습만은 온라인으로는 습득할 수 없기 때문에 학기말에 실습실에서 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1592-1598) 때 사람을 해부하였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당시 길거리에 많은 시체가 있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당시 남인 실학자 전유형은 시체 3구를 해부하였다고 하였으나, 그의 해부 기록은 전해진 것이 없다.

정인혁(1945-2020)에 따르면, 한국에서 해부는 1910년 전후에 시작되었다. 행려사망자, 사형수 등이 해부에 사용되었다. 광복 이전 서양의학자 중에 해부학 전공 교수는 없었으며, 일부 대학에서 일본인 교수가 교육하였다. 일본의 해부학은 독자적인 해부기록, 번역 및 이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고, 나라의 지원에 의한 서양과의 교류와 스스로의 연구를 통하여 발전하였다. 1732년 한 일본의사가 기둥에 묶여 처형된 시체의 뼈대를 관찰하고 이에 대한 글과 그림을 1741년 기록한 것이 시작이었다. 네덜란드 해부학 책을 본 의사(Yamawaki Toyo)가 사람을 해부하여(1754) 장지(藏志)라는 책에 기록하였다. 1771년 어떤 사형 집행 때 참석한 세 의사 중 둘(스키타 겐파쿠, 마에노 료오다쿠)이 그 책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책의 내용과 사람의 구조가 같다는데 흥미를 느껴 네덜란드 말을 배워 책을 번역하여 1774년 해체신서(解體新書)를 출간하였다.

이들이 번역한 책은 독일의 로렌츠 하이스터의 해부학교과서(1721)를 토대로 쿨무스가 쓴 책(Anatomische Tabellen, 1722)이 네덜란드어로 번역된 것이다(Ontleedkundige Tafelen, 1734). 항해하는 배에 탄 의사들이 주로 보는 책이 아시아까지 전파되어 일본어로 번역된 것이었다. 메이지유신(1868) 이후 독일 해부학자를 일본정부에서 초청하였고(1871), 이어 일본 해부학자를 독일로 보내 해부학연구를 하도록 하였다. 이후 일본의 해부학은 높은 수준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대한해부학회가 창립되었다(1947). 해부학용어는 ‘과학기술용어집 해부조직학편’으로 처음 발간되고(1965), 1978년 ‘해부학용어’가 출간된 이래 2005년에는 “해부학용어”(다섯째판)가 나왔다. 1999년에 학회에서 발간한 우리말 해부학 교과서가 나와 학생들은 우리말 교과서로 배우고 있다. 우리 현대의학과 해부학의 시작은 일본에 비해 늦었지만, 오늘날 해부학뿐 아니라, 역병에 대처하는 임상의학도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뒤지지 않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어서 이 역병이 진정되어 의대생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해부학을 가르치고 싶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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