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홍정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

“사립미술관은 지역민의 실핏줄… 복합문화공간 사랑방”
공립 한곳 운영 예산이면 사립 100곳 지원 가능
국가 적극 육성책 통해 다양한 미술관 개관 희망
지역 ‘풀뿌리 문화 오아시스’… 주민 삶의 변화

‘굴뚝 없는 문화산업’, 뮤지엄(박물관ㆍ미술관)을 두고 부르는 말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직 뚜렷한 실체가 없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지자체가 사활을 거는 것도 미술관이 가지는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테다. 그런 미술관이 당면한 과제는 무엇이고, 미술관은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한국사립미술관협회 제8대 회장으로 지난 10일 취임한 홍정주 서호미술관장을 만나 미술관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봤다. 홍 회장은 “사립미술관은 지역민의 실핏줄”이라며 “사립미술관을 키우고 수준을 높여 문화향기가 퍼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1년 반 동안 한국사립미술관협회를 이끌게 됐다. 협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A 지난 2006년 1월 사립미술관 육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으로 국내 미술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창립됐다. 미술관 진흥과 미술 창작 환경 조성, 미술관 전문 인력 양성, 미술관 정책 연구와 대안 제시, 미술관 프로그램 지원 사업 등을 한다. 국민들이 쉽게 아시는 사업으로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통해 미술관 사업 진행, 전문인력 지원 등이다.

Q 성격이 제각각인 전국 사립미술관을 한 데 이끌어가야 하는 만큼 어깨가 무겁겠다.

A 그렇다. 특히 당장 전문인력 지원사업의 지원금이 4~5년간 전혀 늘지 않았다. 신규 미술관은 해마다 10여관 씩 늘어나고, 해마다 최저 임금도 오르고 있다. 헌데 인력지원금은 변화가 없으니, 회원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쉽지 않지만 성격이 다른 사립미술관들의 요구와 어려움을 최대한 귀 기울여 들어 해소하려 한다. 사립미술관이 질 높은 문화 서비스를 지역민에게 돌려 드리는 공공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협회를 이끌어나가는 동안 노력하겠다.

Q 코로나19 속 사립미술관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A 미술관은 작가와 작품, 관람객으로 완성되는 공간이라 코로나19의 피해가 더욱 컸다. 시간이 흐르면서 코로나19를 주제로 전시 기획도 만들고 온라인 전시ㆍ교육이 이뤄지면서 회복이 되고는 있지만, 피해는 미술관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어려움이 많지만 앞으로 미술관이 온라인 시대에 더 신속하게 진입하고, 시대에 맞게 거듭나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계기로 삼고 각자 노력 중이다.

Q 직접적으로 여쭙겠다. 지역에 사립미술관, 왜 필요한가.

A 연극을 보러 가든지, 영화를 보러 가든지 문화의 영역은 넓지만 미술관만큼 복합문화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은 없다. 특히 지역과 어우러지면 더 빛을 발한다. 1992년 화랑 문턱을 낮춰보려고 산동네에서 운영되는 자폐아 치료교실에서 그려진 그림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관람객의 반응이 뜨거웠고, 그 전시 하나로 자폐아 치료교실이 처음으로 흑자를 맞았다. 이게 전시 효과다. 미술관을 단순히 그림, 작품 전시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협소한 생각이다. 많은 미술관들이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복합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Q 국공립 뮤지엄으로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가.

A 국내에 180여개의 등록 사립미술관이 있다. 대한민국 지도를 놓고 점을 찍어보면 매우 부족하다. 국공립은 대부분 큰 도시에만 있다. 지역의 작은 곳, 작은 마을 단위까지 스며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에 반해 사립미술관은 실핏줄이다. 지역민과 지역 특색에 맞는 문화를 제공하고, 지역민과 상생하며 선순환 할 수 있다. 지역민에게 문화 향기를 고르게 전파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대동맥만으로 살 수 없지 않나. 실핏줄이 있어야 한다. 지역 사립미술관은 실핏줄이다. 국공립과 사립을 고루 잘 발전시켜야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Q 결국 국공립과 사립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건가.

A 그렇다. 어쩌면 공립미술관 한 관을 운영하는 예산이면 사립미술관 100개관을 지원할 수도 있다. 국가에서 더욱 적극적인 미술관 정책으로 질 좋은 사립미술관 개관을 독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운영의 질이다. 정부에서 사립미술관에 철저한 등록 심사 등 책임을 물으면서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어렵지 않을 거라고 본다.

사립미술관 역시 스스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운영해야 한다. 미술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교육과 연구 기능도 있다. 공립이 많이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색깔을 지닌 사립이 곳곳에 만들어지면 지역, 마을에서 더 풍부한 문화가 형성되고 지역민의 삶을 바꿀 거라 생각한다.

Q 한국에서 사립 뮤지엄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재를 털어 넣는 일이다. 당면 과제도 많을 텐데.

A 비영리사업이다 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특히 1세대 설립 관장들은 연로하다. 2세대로 미술관이 넘어갈 환경도 만만치 않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우선 전시 방법 등 모든 것이 변화한 새 시대에 맞는 미술관 운영에 대한 관장 재교육을 진행하려 한다. 그동안 큐레이터 교육은 있었으나 관장 교육은 없었다. 또 신설 미술관에는 미술관의 공익성과 가치 등 마음가짐에 대한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Q 고(故)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과 미술관 유치경쟁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다. 미술관장이자 협회장으로서의 생각은 어떤가.

A 고인이 귀한 미술품과 문화재를 많은 이들이 감상하고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선뜻 기증하셨다. 그 귀한 미술품을 받은 정부나 기관 관계자들이 작품의 가치가 지속되고 더 빛날 수 있도록 연구하고 관리하고 전시하는 것,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다.

또 작품이 존재하는 장소가 부여하는 의미와 문화적인 감각이 있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지역의 욕심을 내세운 유치 논리보다는 이런 문화적인 의미와 논리를 고려해서 방향을 정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Q 서호미술관 관장으로서 꿈꾸는 미래도 궁금하다.

A 서호미술관은 처음에 대단한 뜻이 있어서 세운 게 아니다. 타지에서 찾아오던 문화 소외 지역 학생들에게 인사동의 미술 문화를 전해 주기 위한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63빌딩에서 개최됐던 ‘메소포타미아전’, ‘제주 습지전’ 등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전시도 기획했고, 지역민들을 위한 연계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플랫폼 사업을 통해 지역 문화를 소개하고 지역 작가들도 찾아내 전시하려 한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문화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고 싶다. 지역의 사랑방으로서 말이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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