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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만 있고 집은 없다] 上. 이주노동자는 ‘집 아닌 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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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만 있고 집은 없다] 上. 이주노동자는 ‘집 아닌 집’에 산다

16일 오후 포천시 가산면의 채소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가설건축물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6일 오후 6시께 포천시 가산면의 농지. 시야를 빼곡하게 채운 비닐하우스의 행렬 곳곳에서 ‘특이한’ 비닐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푸른 얼갈이배추가 자라나는 투명한 비닐하우스와 달리 시커먼 보온 덮개와 차양막으로 꽁꽁 둘러싸인 모습은 뙤약볕 아래 두툼한 패딩 점퍼를 껴입은 듯 기괴했다.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비닐하우스, 그 안에 창문 하나 없는 조립식 패널 구조.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이곳은 3년 전 네팔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 라이(32ㆍ가명)의 ‘집’이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얼기설기 지어진 공간은 크게 4곳(각 6~10㎡)으로 나뉘었다. 시커먼 곰팡이로 뒤덮인 샤워실, 그 뒤로는 주방으로 쓰는 칸과 세 사람이 머무는 방 2곳이 이어졌다. 방과 방 사이 복도처럼 생긴 흙길에는 비가 내렸을 때 스며든 물기가 그대로 고여 있었고, 언제 마지막으로 돌아갔는지 모를 낡은 선풍기엔 검은 먼지가 꾸덕하게 쌓여 있었다.

라이와 동료들은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우리 여기 살지 않아요”, “좀 이따 사장님 올 거에요”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쏟아냈다. 이주노동자의 주거 실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농장주들이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기 시작한 것. 라이의 불안한 시선이 닿은 비닐하우스 입구엔 CCTV가 달려 있었다.

“여기, 사람 살 수 없어요”

1시간에 걸친 설득 끝에 마음을 연 라이의 첫마디는 이랬다. 가장 불편한 것을 묻는 물음에 비닐하우스 밖으로 열 걸음 이상 떨어진 1㎡짜리 가건물을 가리켰다. 라이가 ‘토일렛’이라 부르는 그것의 문을 열자 변기 대신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가 사는 네팔에도 이런 화장실은 없다고 했다.

지난 2018년 봄, 한국 땅을 밟은 라이는 하루에 12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이틀을 쉰다. 농장마다 다르지만, 이주노동자 2~3명이 많게는 100개의 비닐하우스를 관리한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180만원 언저리. 월급은 명확한 기준 없이 들쑥날쑥하지만, 숙소비로 꼬박꼬박 30만원씩 떼인다. 이렇다 보니 라이가 받는 임금은 150만원도 채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칠뿐더러 정부의 지침에도 어긋난다. 고용노동부는 임시시설에 대한 숙식비 징수를 임금의 8% 이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내야 할 월세는 많아야 15만원 안팎, 라이는 그 2배를 뜯기고 있는 셈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지난해 11월 농ㆍ어업 분야 이주노동자 3천850명을 대상으로 주거환경을 조사한 결과, 99.1%는 고용주가 제공한 숙소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9.9%는 조립식 패널ㆍ컨테이너ㆍ비닐하우스 등 가설건축물에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를 마치고 한 달 뒤, 포천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이주노동자가 숨졌다. 보일러도 돌아가지 않는 곳에서 추위를 견디다 눈을 감았다. 달라진 건 계절, 다가오는 폭염과 폭우에 떨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은 그대로다. 이주노동자는 아직도 ‘집 아닌 집’에 살고 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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