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권리 빼앗는 고용허가제…헌재 “합헌”

헌법재판소

열악한 작업ㆍ주거환경에 놓인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등 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고용허가제(경기일보 7월19일자 1ㆍ3면)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3일 외국인고용법에 대한 위헌확인 소송에서 재판관 찬성 7, 반대 2 의견으로 헌법소원 청구를 각하했다.

앞서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 A씨 등 5명은 사용자의 일방적인 근무시간 변경, 수당 미지급, 무면허 기계 조종 강요 등 노동법 위반 행위가 있는 경우에도 사업장을 자유롭게 바꿀 수 없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내용으로 헌법소원을 청구(경기일보 8월18일자 6면)했다.

심판 대상에 오른 건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 제4항, 고용노동부 고시 등으로, 이들 법령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는 핵심적인 근로조건 위반이나 인격적 모멸 행위 등이 발생한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제한된다.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대한 우려 또는 열악한 작업환경 등을 이유로 일터를 바꾸고 싶다면, 사용자의 동의를 구하거나 노동부 고시에 따라 ‘노동자의 책임이 없다’는 점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폭언ㆍ폭행을 당하거나 가설건축물 등을 숙소로 제공받아도 사실상 사업장 변경이 어려웠고, 곧 ‘강제노동’으로 내몰렸다.

 

7월16일 오후 포천시 가산면의 채소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가설건축물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7월16일 오후 포천시 가산면의 채소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가설건축물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그러나 헌재는 해당 법령들이 고용허가제를 취지에 맞게 존속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외국인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게 하면 사용자로서는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장기 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반대 의견을 낸 이석태 재판관 등은 “사업장 변경 사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ㆍ감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고용허가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협할 수 있고, 이주노동자에게 직장 선택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도 사업장 변경의 우려가 현실화될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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