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상차량을 둘러싼 택배업계의 논의가 헛심 공방(본보 5월17일자 1ㆍ3면)을 거듭하며 끝내 합의가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 저상차량은 근로자의 신체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28일 밝혔다. 결과의 초안은 지난 9일 노사 양측에 전달됐으며, 구체적인 수치는 향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차량 지상 출입금지 문제가 불거지며, 정부와 노사는 지난 5월 ‘지상 공원형 아파트 배송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당초 이 협의체는 6월까지 합의를 도출하기로 했지만, 사측에서 별도 입장조차 내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한 달가량 미뤄졌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저상차량이 택배기사의 신체 건강에 무리를 준다고 주장했고, 노동부의 저상차량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 조사 결과에 따라 협의체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전망됐다. 결국 저상차량은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노조의 주장에 힘이 실렸지만, 사측에서 결과를 다르게 해석하며 재차 충돌하는 모양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의 안전 및 건강을 유지ㆍ증진시킬 의무를 가진다. 또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환경 개선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에 따라 택배노조는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가 높은 저상차량을 퇴출(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측은 본사와 택배기사 간에 직접 고용 구조가 성립하는 게 아니라, 본사가 대리점과 계약하고 다시 대리점과 택배기사가 계약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해당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무엇보다 조사 결과를 놓고 심각한 위해 요인이 아니라고 해석, 차량 운영을 중단하는 대신 다른 보완책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최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측은 택배기사의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위치라는 이유로 사측의 ‘사용자성’을 최초로 인정한 만큼 산업안전보건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택배노조 쪽으로 기울 전망이다.
협의체는 오는 30일 예정됐던 회의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종료되는 내달 8일 이후로 연기했다. 다음 자리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법적 공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부의 객관적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저상차량 금지를 요구한다”며 “법에 따른 이행을 바라는 건데, 사측에서 억지 주장을 펼친다면 법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협의체를 통해 노사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중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