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사헌부 지평으로 훈련원의 무과시험을 감찰할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노론계열 출신의 시험관들이 교묘한 질문으로 지방 출신 무사들을 떨어뜨리다 보니, 결국 합격자들은 시험관들과 같은 서울의 노론계 인물들 일색이었다. 그러자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직을 걸고 이를 바로잡도록 했다.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노론에게 미운털이 박히면서, 나중에는 평생 유배지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나라의 근간이 될 인재를 뽑는 일만큼은 공정해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가시험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과연 정약용 선생이 뭐라 꾸지람하실지 부끄러워진다. 초등학교 임용시험 1차 문제 중 일부 문항이 수도권의 한 교대 모의고사와 유사했고, 올해 수능 생명과학 과목에서는 관련 분야 최고 석학인 스탠퍼드 대학교수조차도 “문항에 수학적 역설이 있다. 도저히 풀 수 없다”는 지적을 할 정도의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특히 세무사시험에서 발생한 세무공무원 특혜 의혹이 가장 큰 논란이다. 지난 9월 시행된 세무사 2차 시험 중 세법학 1부 응시자 3천900여명 가운데 82%인 3천254명이 100점 만점에 40점을 밑돌며 과락처리됐다. 하지만 세무공무원 경력자들은 해당 과목이 면제된 까닭에 대규모 과락사태를 피하게 되었고, 실제 전체 합격자 중 세무공무원 비율이 지난 5년간 3% 수준에 머물다가 올해는 10배가 넘는 33.6%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자 세무사시험을 주관하는 산업인력공단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일 뿐, ‘세무공무원 출신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난이도 조작’이라는 의혹은 전면 부정하며, 채점기준표에 부분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뒷북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번 초유의 과락사태가 곧 세무공무원 출신들의 대거 합격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불공정 논란의 나비효과는 매섭다. 그렇기에 이번 시험출제부터 채점까지 특별감사를 통한 진상조사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특히 사회적 약자도 아닌 모두가 선망하는 세무공무원들에게 10년 이상 현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1차 시험 및 2차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현 제도가 정당한지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국가시험은 공정할 거란 착각…. 하지만 ‘과정이 공정하다면, 결과 역시 감수할 수 있다’는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가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진지하게 되묻고 싶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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