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서툰, 무엇보다 긴 글은 다들 안 읽는 모니터 세상인 게 맞다. 가입자 27억이라는 수치와 별개로 체감 사용자는 명백히 줄어든 소셜 미디어가 페이스북인 것도 맞다. 얼굴, 이름, 나이, 직장, 사는 곳 같은 개인 정보를 잘못 노출했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이불 밖은 위험한’ 시절인 것도 분명하게 맞다, 다 맞는데- 이 맞고도 당연한 시대의 룰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희한한 페이스북 그룹이 하나 있다.
이름은 ‘미국 사는 한국인 그룹’.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공통 분모 하나로 얼기설기 모이다가 그저 만들어졌다 확신하게 되는 심플한 네이밍이다. 나도 미국 사는 한국인이라서, 자격이 심히 단순해서 그냥 가입했다. 멤버 2만명이 훌쩍 넘는다.
이 그룹에서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겪은 하루, 불쑥 떠오른 기억, 옛 친구의 사연, 눈물 쏟는 엄마 생각 같은 여리고 상처나기 쉬운 일상을 타인들과 꼬물꼬물 나눈다.
메릴랜드에 사는 한인 남성이 ‘순대국밥이 너무 먹고싶어 순대를 만들었습니다’며 올린 사진 레시피는 400여명의 군침어린 좋아요를 받았다. ‘심장병원 디렉터로 일하는 딸이 미인대회에 출전했는데 너무 떨린다’면서 자랑인지 엄살인지 헷갈리는 아빠의 인간미에는 응원 댓글이 이어졌다.
포르셰 자동차 키와 함께 새 차와의 기념사진을 ‘자랑하려고 올렸다’는 남성의 돈 자랑에는 뜻밖에 수백명의 진심어린 축하 세례다. 잘 사는 미국인의 나라에서 갖은 고생 견디고 부지런히 살아온 끝 스스로를 위로하는 ‘부자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는 사연에 절절한 동감과 박수가 터진 것이다.
이민 세대들의 진솔한 이야기판에 입양 한인들도 서툰 한국어로 얼굴을 내민다.
수십년 전, 여동생과 함께 한국서 건너온 남매를 향해 양아버지가 ‘멍멍 강아지, 꿀꿀 돼지, 원숭이, 고양이, 코뿔소’ 하며 서툰 한국말로 시리고 멍든 어린 가슴을 웃게 만들었다는 옛추억도 등장했다. 그 다정하던 아버지가 위독해 기도를 부탁하는 남성의 글에는 천명의 좋아요와 300여명의 기도 댓글이 달렸다.
어떤 한인 여성은 우연히 만난 한국 여학생의 고된 독학을 위해 한국의 지인과 5년간 매달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었는데 마침내 그 학생이 옥스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며 자신의 ‘프로젝트’가 성공했음을 알려왔다.
다 큰 어른들이 주저함도 경계심도 없이 당황스럽도록 소탈하게 마음을 내어놓는 참 이상한 이 페북 그룹방에 나는 특별한 연대감을 느낀다. 그 마음을 잇는 끈은, 다들 실타래로 한덩이씩 품고 사는 ‘모국’에서 나오는 것임을 안다.
지난 13일은 최초의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첫 발을 내딛은지 119년 되는 날이었다. 미국 국회가 지정한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 이기도 했다.
최주미 애틀랜타 중앙일보 디지털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