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3월의 자세

새뜻한 3월. ‘새’ 맛은 역시 3월이다. 한 해 시작인 1월보다 출발의 느낌을 더 새롭게 깨워낸다. 그래서 자세도 새로 가다듬고 걸음도 더 바르게 걸어야 할 것만 같다. 새 책, 새 공책, 새 학년이니 입학 같은 새로운 출발의 큼직한 단위나 기억들이 오래 작동하는 까닭이겠다.

사실 2월은 쉬어가는 달처럼 조금 느슨히 보내기 쉽다. 2월 봄방학을 두던 우리네 학기 운용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2월은 이삼일이 짧아서 미처 못 다한 일도 봐주고 싶어진다. 여느 달보다 짧은 만큼 아량은 더 있는 셈이랄까. 그렇게 2월 보내고 3월의 입구에 서면 긴장감이 확 몰려온다. 자, 이제 본격적인 출발인데 무엇부터 어떻게 실행해야 하지? 묵은 먼지를 털며 괜히 서성이다 주변 공기마저 팽팽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듯 마음 다잡게 하는 무슨 채근이 3월에는 더 있는 게다.

예전에는 3월이 싫었다.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흙길 때문에 더 그랬다. 신발이며 바짓단에 진창이 들러붙기 일쑤라 풀이 자라던 가장자리만 딛는 발자국들로 새 길이 날 정도였다. 질척거리긴 마당도 마찬가지여서 봉당이며 댓돌까지 묻어 다니는 흙들에 비질이 바빴다. 그러던 3월 진창길 대신 지금은 미세먼지로 괴롭다. 온화한 봄날의 복병인 미세먼지군단. 제국의 점령처럼 뒤덮던 황사보다 더 치명적인 미세먼지 예보에 걱정이 앞선다. 오미크론 대확산까지 겹친 먼지세상이라니 암울하다. 벌써부터 눈과 목이 따끔대는 노약자나 기저질환자는 봄을 또 어찌 살아낼 것인가.

그런 중에도 꽃소식은 여전하니 3월을 새롭게 만드는 즐거움이다. 얼음 속에 먼저 피는 이른 봄꽃들 뒤를 따라 우리 산하를 피워낼 꽃들이 골목골목 즐비하다. 간간이 치는 꽃샘추위쯤 다 물리치면서 봄꽃들은 그렇게 희망을 피워 새록새록 건넬 것이다. 어김없이 새 꽃을 피워내는 자연에 우리는 또 사람이 못 주는 꽃 위안을 받으리라. 특히 올 3월은 사람 꽃이 환히 피길 바랄 테지만, 그와 다르면 어느 꽃도 꽃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의 꽃이 펴야 정작 참다운 꽃봄이라고 환대하듯.

그나저나 3월은 춘삼월이다. 웅크렸던 어깨 펴고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금 풀어진 채 보낸 2월을 털고 달력을 펼쳐본다. 무엇이든 시작하라고 곧 많은 프로그램이 손짓을 더할 것이다. 덩달아 우리의 설렘이나 들렘도 뭐가 새로이 할 만한 일인지 눈을 밝힐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든 도전의 재도전이든, 코로나 시국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겨 나서리라. 지쳤다고 주저앉아 바이러스 탓만 하며 우리 앞의 시간을 그냥 보낼 순 없지 않은가.

그렇게 추켜보니 바닥났던 기운이 좀 솟는다.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고, 너 자신을 피우라는 어린 꽃망울들의 채근도 들리는 듯싶다. 멀리 꽃피는 소리에 다듬어보는 봄맞이 자세다.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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