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분열과 갈등의 틈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위대한 스승이 있다. 그분은 바로 몽양 여운형(1886~1947)이다. 몽양은 해방정국에서 외세에 의해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좌우로 갈라져 싸우는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며 좌우통합과 분단극복을 온몸으로 실천하셨던 분이다. 몽양은 양평사람이다. 경의중앙선 신원역에서 가까운 곳에 여운형의 생가와 몽양기념관이 있다. ‘물소리길’이란 예쁜 이름의 언덕길 옆에 자리 잡은 ‘묘골애오와공원’을 둘러본다. 묘골은 몽양이 살던 동네 이름이며 애오와(愛吾窩)는 ‘나의 사랑하는 집’이란 뜻이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동상을 둘러싸고 있는 대리석에 선생의 행적이 새겨져 있다. 러시아혁명의 주역 레닌과 트로츠키, 중국의 혁명가 쑨원,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 호치민, 선교사 언더우드의 얼굴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몽양이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하던 시절에 교류한 사람들이다. 물론 몽양은 일본의 정치가들과도 여러 차례 만났다. 이처럼 몽양은 조국 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이념과 신분,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 익어도 새로운 몽양의 어록비를 살피며 느릿하게 걸었는데도 어느새 기념관이다.
■새로운 나라를 향한 몽양의 길
몽양기념관(관장 이철순) 벽면에 ‘맑은 행복 양평 2022.1.25. 몽양기념관 새롭게 개관하다’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관장께 몽양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전시관을 둘러보기 위해 일어섰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시설을 개편하고 유물, 사진, 기록 등 새롭게 확보한 자료를 활용해 몽양의 패턴화와 이미지화를 시도했지요. 상설전시는 ‘평등과 애국계몽의 길’, ‘자유와 독립의 길’, ‘평화와 통일의 길’, ‘몽양 여운형의 길’이라는 4가지 주제로 여운형 선생이 지나온 길을 통해 선생이 보여준 정신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박경표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관에 들어선다. 빛이 쏟아지는 유리 천장 아래로 하얀 천이 길게 드리워진 전시관 입구가 인상적이다. 만장으로 몽양의 일생과 사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구성이다. 몽양의 독립과 자주정신을 관람객에게 오롯이 전달하려는 열망이 느껴지는 훌륭한 연출이다. 천에 새겨진 글귀가 한눈에 들어온다. ‘몽양 여운형 그는 누구인가? 몽양은 조선의 자주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꿈을 실행하는 삶의 길을 걸었다.’ 옆에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수인복을 입은 몽양의 얼굴과 ‘조선을 사랑한 독립운동가’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계몽을 실천한 기독교 선교사’라는 글귀에 눈길이 잠시 머문다. 아, 몽양이 신학을 공부하고 선교사로도 활동했구나! 몽양은 ‘여행을 사랑했던 모험가’이자 ‘청년과 문학을 사랑한 언론인’이었으며 ‘세계로 나아간 조선의 혁명가’였다. ‘일곱 남매의 아버지’였고 ‘사상을 뛰어넘는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일대기를 한국사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과 관련 사진을 동시에 제시하여 그 시대를 통으로 이해하도록 구성하고 있다.
■평등과 자주를 향한 지도자의 한평생
몽양(夢陽) 여운형은 1886년 경기도 양평군 신원면 묘골에서 태어났다. 몽양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동학을 신봉하고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유배를 살았던 실천적 선비였다. 작은할아버지는 해월 최시형을 도와 <용담유사>를 편찬했던 분이다. “며느리를 사랑하라. 노예를 자식같이 사랑하라. 일체의 모든 사람을 한울로 인정하라. 손님이 오거든 한울님이 오셨다 하고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 <용담유사>에 실린 내용처럼 몽양의 평등사상은 동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1주제인 ‘평등과 애국계몽의 길’에서는 노비해방과 양평 고향 집에 설립한 광동학교 등 기독교 선교사 활동을 중심으로 한 계몽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광동학교’를 디오라마 모형을 통해 재현했다. 2주제인 ‘자유와 독립의 길’에서는 김규식을 파리에 파견하여 우리의 독립의 의지와 당위성을 전 세계에 알렸던 신한청년당 조직과 도쿄제국호텔연설 그리고 조선중앙일보 사장 시절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중앙일보에 천재 시인 이상의 ‘오감도’를 연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도쿄제국호텔에서의 연설을 육성으로 재현했으며, 세계를 무대로 한 외교활동을 멀티터치스크린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곳곳에서 어린 관람객을 위한 속 깊은 배려를 발견할 수 있다.
3주제인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는 해방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조직한 조선건국동맹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그리고 좌우합작위원회를 통해 남북, 좌우로 분열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헌신한 선생의 노력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선생이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몽양이 원했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지금의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그려 볼 수 있다. 4주제인 ‘몽양 여운형의 길’에서는 선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역사로 남은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재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로 재조명하는 공간이다. 피격의 현장에서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상의(혈의)와 2차 미소공동위원회와 관련한 내용이 적힌 수첩 같은 소장품들을 함께 전시하였다. 특히 장례식에서 여운형 선생을 보내며 사회 각층에서 만든 만장 다섯 장을 전시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은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대표적인 분이다. 서거 58주기가 되는 200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고 61주기가 되는 2008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던 사실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 관장의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전시관을 둘러본 관람객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몽양을 빨갱이로 알았는데,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다르네. 몽양이 선교사를 지냈어?” “일장기말소사건도 몽양이 기획한 것이었네!” “이상의 ‘오감도’를 연재한 곳도 몽양이 사장으로 재직했던 조선중앙일보였네! 내가 여태 잘못 알고 있었구나!”
■평화를 이루는 몽양의 꿈
그렇다. 몽양기념관을 둘러보면 우리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왜곡되고 편협한 것이지 금방 깨달을 것이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생가를 거닐면서 이 관장이 들려주는 소식이 반가웠다.
“지금 몽양기념관의 부속시설인 ‘몽양 교육관’의 신축을 준비하고 있는데 오는 12월에 준공 예정입니다. 감사하게도 유족들이 땅을 기부하셨지요. 사실 꼭 필요한 것이 교육인데, 여태 교육관이 없었습니다. 마침 군수님이 도비 25억과 군비 16억 합 41억을 확보해서 교육관을 건설하도록 지원해주셨습니다. 장차 이곳을 ‘몽양 평화공원’으로 조성하여 청소년들에게 몽양의 정신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기념관의 대중화 원년 선포했지요. 올해는 이것을 좀 더 확장할 계획입니다. 몽양을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에 살아 움직이는 분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몽양의 위대한 정신은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워 한국의 농촌을 변화시킨 김용기 장로는 몽양이 세우고 가르친 광동학교 출신이다. 기독교 교육단체인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설립해 청년지도자를 육성하고 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강원룡 목사도 몽양의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봄이다. 물 맑은 양평에는 예술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로 소문난 곳이다. 물론 미술관도 여럿이다. 특히 탁월한 기획력으로 전국 미술관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양평군립미술관이 멀지 않는 곳에 있다. 몽양기념관 이철순 관장이 양평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몽양기념관의 멋진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몽양기념관과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양평군의 노력으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정신이 봄물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몽양 정신으로 화합하고 협력하여 상생하는 새로운 ‘삶의 문화’가 활짝 꽃피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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