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꼭 손으로만 쥘 필요도, 색을 꼭 눈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세상의 편견을 부수며 ‘가능성의 예술’을 찾아나서는 이들이 있다. 장애화가 이야기다.
제42회 장애인의 날 전날이던 지난 19일 안양 소울음아트센터에 들어섰다. 2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도, 성별도 다른 7명의 작가들이 조용히 집중하며 저마다의 이젤을 마주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팔레트와 큼지막한 캔버스. 여느 미술 작업실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1992년 설립된 소울음아트센터는 선·후천적 장애를 입은 사람들의 ‘그림 공간’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장애인 미술교육기관이기도 하다. 매주 화·목요일마다 안양시와 안양시평생교육원의 지원을 받아 서양화 실기 교육 등을 진행한다.
올해로 14년째 붓을 문 구족화가 임경식씨(45) 역시 중증 지체장애인으로 이곳 수업에 참여한다. 손을 쓰지 못해 입이 도구가 된다. 이날 진지한 얼굴로 고뇌하던 그는 이내 진한 파란색 물감에 하얀색을 살짝 묻히더니 자연스레 섞고선 콕콕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은 <꿈을 꾸다> 시리즈로, 50여점 이상의 작품이 있다. 지난해 11월 개인전까지 연 국내 구족화가의 대표주자다.
과거 그림에 재주도, 관심도 없던 삶을 살았다는 임 화가는 어느 날 문득 “장애가 있다고 허송세월을 보낼 게 아니라 뭐라도 하면서 사회에서 자립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다. “저는 무엇 하나 혼자서 해내기가 힘들지만 그림 속에선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나. 금붕어를 하늘에 띄운다던지…”라며 웃음을 보인 그는 “그림 속에서 따뜻함과 푸근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큰 바람 없이 그저 건강하기’다. 임 화가는 “건강을 지키며,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거북이처럼 꾸준히 활동하는 화가로 일평생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곳 소울음아트센터에는 임 화가 외에도 지난해 한국장애인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이정옥 화가(지체장애), 입선에 오른 이형균 화가(정신장애) 등이 몸 담고 있다. 시각·청각·뇌병변·정신지체 등 장애예술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이는데, 평균 경력만 10년에 달하는 ‘고수’들이다.
같은 강사에게 같은 그림 교육을 받으면 화가간 화풍이 비슷해질 수 있지만, 이곳에선 다른 세상 얘기다. 개개인의 경험과 생이 다르다 보니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게 특장점이자 매력이다.
안양시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은 이러한 장애화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소울음아트센터 초대전: 안녕하세요> 전시를 열기로 했다. 오는 27일까지 복지관 4층 봄 갤러리를 개방한 것.
전시장에서 만난 김옥규 소울음아트센터 대표(67)는 “그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실력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다. 장애예술인들이 ‘불쌍한 사람’,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결코 아님을 알리기 위한 전시에 지역에서도 큰 관심과 도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정직·성실·건전하게 운영하며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속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