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인 이돈형 선생의 유물기증에 힘입어 2002년 5월 성호공원 내 ‘기념관’ 문열어 2020년 2월 ‘성호박물관’으로 명칭 변경...손수 농사하며 학문 연구 ‘삶의 행적’ 간직 상설전시실 중앙에 ‘성호사설’ 세 권 눈길
실학의 거목 이익 선생 ‘평범한 일상 위대한 업적’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역사문화와 첨단산업의 도시 안산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안산은 성호가 두 살 때부터 83세로 별세할 때까지 평생을 살았던 고장이다. 안산시는 한국 실학의 거목인 성호 이익 선생의 거룩한 삶과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토사학자들과 이익의 후손인 이돈형 선생의 유물기증에 힘입어 2002년 5월에 성호공원 내에 ‘성호기념관’을 건립한다.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알리던 성호기념관은 2020년 2월에 ‘성호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02년에 문을 열었으니 2022년은 개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박물관 입구에 동으로 조각한 커다란 책이 있다. 성호 이익의 실학 정신을 보여주는 ‘육두( :여섯 마리 좀 벌레)’란 글이 새겨진 조각상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 시대의 좀 벌레는 무엇일까?
■ 성호 이익, 안산이 낳은 위대한 개혁 사상가
성호 이익은 조정에서 서인들이 남인을 몰아낸 경신환국(1680)으로 평안도 운산에서 유배를 살던 매산 이하진과 안동 권씨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이익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안산 첨성리로 낙향했다. 몸이 매우 약해 10세에 비로소 둘째 형 이잠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익은 자신을 가르친 둘째 형 이잠이 장희빈을 옹호하다가 죽임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육영재’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며 지냈다. 육영재는 ‘동국진체’를 개발한 셋째 형 옥동 이서(1663~1723)의 서재다. 미수 허목을 사숙하고 반계 유형원의 저술에 큰 영향을 받은 이익은 자신도 좀 벌레와 다름없다고 자책하다가 손수 꿀벌을 치고 닭을 기르며 채소를 가꾸어 ‘사농합일(士農合一)’을 실천했다. 이익은 제자들에게 학문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옛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의문을 가져라,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의 탐구에 힘을 쏟아라” 권철신, 안정복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역사와 경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꽃을 피웠다.
■ 21세기 성호에게 길을 묻다
2층 상설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성호 이익 선생의 일대기를 보기 좋게 정리했다. 전체를 살펴보면 이익 선생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우리에게 남긴 업적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상설전시관은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주제로 가전된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전시실 입구에 쓰인 “21세기 성호에게 길을 묻다”란 글귀가 성호박물관의 지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성호 이익의 아버지 매산 이하진이 1680년 무렵에 쓴 10첩 친필의 ‘천금물전(千金勿傳)’은 천금을 주더라도 남에게 이 책을 주지 말라는 뜻을 가진 서첩으로 보물이다. 서체도 빼어나지만, 17세기 문인들이 어떤 물건들은 아끼고 즐겼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품격이 느껴지는 거문고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된 이 거문고는 ‘옥동금’을 비롯해 무려 일곱 개의 이름을 가졌다. 옥동(玉洞)은 이익의 셋째 형님의 호다. 형님이 연주하는 거문고 선율을 듣고 성호 자신도 연주해 보았을 것이니 형제의 손때가 묻은 유물이다. 거문고 아래 놓인 거울에 비치는 글은 거문고 뒷면에 새긴 글이다. “거문고의 내력이 흥미롭습니다. 금강산 만폭동에서 벼락을 맞아 고사한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 장인 문현립에게 제작했다는 사연이 적혀 있지요. 거문고 위에 있는 악보는 한글로 된 것입니다. 둘째 형님 이잠은 성호 선생에게 학문을 가르친 분이고, 셋째 형님 옥동 이서는 ‘동국진체’라는 이름을 얻은 서예가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성호의 형제분들도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강민우 학예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물을 보는 흥미를 배가시켜 준다. 한 폭의 자그마한 산수화에도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이것은 퇴계가 강학한 ‘도산서원’을 그린 그림입니다. 왜 ‘도산서원도’가 이곳에 걸려 있을까 궁금하시죠. 성호의 학문적 계보는 형님 이잠을 거쳐 미수 허목, 한강 정구, 퇴계 이황으로 연결됩니다. 퇴계를 몹시 존경했던 이익은 1751년 이웃에 살던 표암 강세황에게 도산서원을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도산서원도는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이 성호의 부탁을 받고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 왼편에는 이러한 사연을 담은 강세황이 쓴 발문이 있다. 콩죽이 놓인 작은 상이 눈길을 끈다. 콩죽, 콩나물, 된장은 성호가 즐겨 먹은 음식이다. 검소하게 생활한 성호의 모습이 그려지는 전시물이다. ‘성호사설’을 보면 성호는 손수 닭을 기르고 꿀벌을 치고 남새밭에 채소를 길러 먹었다. 글을 읽으면서 농사를 짓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상설전시실 중앙을 차지한 것은 성호 이익의 사상이 담긴 ‘성호사설’ 세 권이다. 책 뒤에 ‘성호사설’의 내용인 ‘천지문’, ‘인사문’, ‘만물문’, ‘경사문’, ‘시문문’이 새겨져 있고, 선생의 말씀도 새겨 놓았다. “지극히 천한 퇴비와 지푸라기도 밭에서 곡식을 기르고 부엌에서 반찬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 글을 잘 보면 어찌 백에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이 없겠는가” 성호는 가난한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실천과 고민을 저술로 남겼다.
■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박물관
사대부가에서 사용했을 것 같은 품위가 느껴지는 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기증유물로 꾸민 공간에서 만나는 유물은 붓걸이와 등잔, 촛대, 안경집, 주전자, 장식함 등 소품들이지만 품위가 느껴진다. “2002년 개관 이래 2천800여점의 유물을 수집하였습니다. 그중 절반이 넘는 1천500여점이 기증유물입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좋은 박물관을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한 분들의 성함을 새겨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장유물전 ‘진주 유씨, 안산에서 꽃피다’가 진행되고 있다. 진주 유씨 가문에서 기증한 360여점의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한 ‘진주 유씨, 안산에서 꽃피다’는 400여년 전 선조대부터 안산에 터를 잡은 이 가문이 경기 남인의 명가로 발전하는 과정과 해암 유경종 등 가문의 인사들이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성호학이 후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2020년 파평 윤씨 좌찬성공파 문중에서 기증한 유물 580여점을 바탕으로 펴낸 자료집 ‘파평 윤씨, 가문의 기록’은 안산에 터전을 두었던 한 가문의 내력을 오롯이 살필 수 있다.
영상실에서 성호 이익의 학문의 세계를 살펴본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영상물이라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기가 쉽다. “영상을 보고 전시관을 관람하거나, 전시관을 관람하고 나서 영상을 봐도 좋습니다. 이곳에 잠시 쉬면서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도록 꾸몄지요”
상설전시실 입구에 있는 창문에 ‘성호선생 묘소’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유리창에 왜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곁에 있던 문화해설사가 까닭을 알려준다. “저 길 건너편을 보세요. 성호 선생님 묘소가 보이지요”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길 건너편 언덕 푸른 소나무들 사이로 무덤 하나가 보인다. 성호 선생이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후학들을 굽어보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하는 공간이다.
지하 1층의 체험전시실은 묵향 가득한 상설전시실과 달리 밝고 생동감이 넘친다. 성호 이익과 관련한 체험전시를 하는 곳이다. 탁본을 비롯해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손발, 귀와 코까지 오감을 통해 아이들이 즐기며 배우도록 구성한 것이 돋보인다. 평일이라 그런지 어린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단체로 관람을 온 모양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상당한 공을 들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성호박물관은 ‘성호학의 원형과 글로벌 인문학으로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오는 10월13일부터 3일간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성호박물관은 안산을 넘어 대한민국 인문학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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