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체만 세운뒤 4년간 방치 ‘미완의 찜질방’...하버드 출신 건축가 권순엽 통해 재탄생 욕탕 공간이 ‘바스갤러리’ 메인 실내 전시장...‘지붕 없는 전시장’ 아이들 놀이터 제격 개관 8년만에 300여명 작가와 35번 기획전...세상을 관통하는 ‘탄탄한 기획력’ 정평
찜질방의 변신... 사람을 품다 건축을 품다
소다미술관(SoDA, 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은 디자인 건축 미술관이다. 2015년 4월 화성시 안녕동에 개관한 소다미술관은 ‘함께하는 미술관’, ‘담을 낮춘 미술관’, ‘가족 미술관’을 지향하며 지역과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소다미술관은 개관한 해에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디자인상의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본상을 연속으로 수상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 건물주 ‘열린생각’이 만들어낸 ‘열린공간’
푸른 잎이 무성한 자작나무가 미술관 입구에 그늘을 만들고 있다. 미술관에서 기발한 생각과 만난다. ‘신체건강’, ‘내가해냄’, ‘행복하자’, ‘창의력’, ‘나만믿어’, ‘거절한다’, ‘노오오력’이란 글자가 새겨진 종이 카드 중에서 ‘뜻밖의운’을 뽑아 호주머니에 넣는다. “전시를 다시 보고 싶으면, 미술관 입장권과 얼굴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두어야 해요. 사진을 보여주면 전시기간 동안 재입장이 가능합니다”
장동선 관장이 들려주는 소다미술관의 탄생기가 흥미롭다. 미술관의 건물주는 찜질방을 건축하기 위해 2009년에 공사를 시작하지만 1층 철근콘크리트 벽체와 천장 구조를 마무리하고 공사를 멈춘다. 시장 환경이 급변해 찜질방으로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 탓이다. 4년을 방치하던 건물주는 하버드 건축대학원 출신의 건축가 권순엽씨(디자인스튜디오 SOAP 대표)에게 건물의 구조 변경을 맡긴다. “층구가 굉장히 높아 전시하기에 좋은 구조라는 생각에 건축가인 남편과 건물주와 함께 미술관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건물주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었으면 탄생하기 힘든 공간이었죠” 정 관장은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디자인 컨설턴트답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꺼낸 주인공이다.
찜질방으로 짓던 콘크리트 벽체는 지붕 없는 야외 전시장으로 변모하고 불가마의 내화벽돌은 바닥에 깔았다. 널찍한 옥외주차장 공간은 설치조각 작품과 카페테리아 테이블이 놓인 잔디정원으로 변신했다. 밖으로 드러난 미술관의 천장과 벽체에 난 빈 공간에 설치 작품을 전시하고, 2층에는 컨테이너 3개를 올려 계단실, 전시 공간, 세미나실로 꾸몄다. 마침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개성적인 소다미술관이 완성된 것이다. 공사를 마무리하자 건축주는 미술관의 운영을 권 대표와 장동선 관장에게 부탁한다. 미술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바스갤러리(Bath Gallery)’는 목욕탕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메인 실내 전시 공간이다. 불규칙한 단차와 마감을 하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화이트 벽면이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보여준다. ‘지붕 없는 전시장(Roofless Gallery)’은 찜질방의 ‘방’이 가지는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보를 제외하고 지붕을 잘라내어 하늘을 그대로 보이게 한 외부 전시공간이다. 2층의 ‘아트테이너(ARTtainer)’는 건축물 상부에 화물컨테이너를 덧대어 교육, 전시, 세미나, 상점 등으로 활용되는 유연한 공간이다.
■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는 공간
지붕 없는 전시장은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손색이 없다. 높이 설치된 파이프에서 비처럼 물이 내리는 ‘스카이 샤워(Sky Shower)’ 아래로 온몸을 감싸는 커다란 우산을 쓴 어린이가 놀고 있다. 햇살이 비치자 오색 무지개가 선다. 재미에 흠뻑 빠진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하다. 개관 8년 만에 소다미술관은 화성은 물론 수도권에서 많은 관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소다가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구성원들의 뛰어난 기획력 덕분이다.
“소다의 자랑은 좋은 팀입니다. 개관 8년에 300여 명의 작가와 35번의 기획전을 열 수 있었던 힘입니다. 재미있는 미술관이어야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지요. 다양한 콘셉트를 갖춰야 해요. 최고 수준의 전시회를 열기 위해 기획력을 총동원해왔습니다. 소다의 기획 팀원들은 독서를 많이 해요. 세상을 읽는 눈과 촉을 기르기 위해서죠” 장 관장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소다는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도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기획전을 열고 있어요. 전시실의 미술작품만 아니라, 건물의 구조와 디자인,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이곳의 모든 게 예술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배치하죠. 삶과 일상 전체가 예술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경영 철학을 질문하자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술관에 관장의 취향이 보이면 발전은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해요. 관장은 자신의 색깔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중성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다의 철학과 입장을 정제된 언어로 정리하여 미술관 식구들과 공유합니다”
소다미술관이 다루는 주제는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다. 장 관장은 이를 “경계 허물기”란 말로 풀어낸다. 음악공연을 비롯해 아트장터와 플리마켓 같은 이벤트도 연다.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 이웃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돋보인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에 화성시와 발달장애예술인의 작품들을 선보인 특별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인 셈이다. 소다미술관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넉넉하다. 코로나19로 힘들어했던 지난해에 연 ‘청년들들장’은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소다의 철학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지역 청년농부와 예술가, 시민이 함께하는 장마당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소다의 생각이 신선하다.
■ 세상을 향해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라고 외치는 곳
건물을 리모델링 후 디자인 건축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다 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건축요소의 하나인 ‘단(段)’을 주제로 현 사회의 문제와 대안을 찾고, 오늘날 공동체의 화합과 소통 방안을 모색한다. 박지현, 조성학 건축가는 전시장 콘크리트 기둥 열에 입체적 층을 설치해, 공간의 깊이를 극대화시킨다. 층층이 결합돼 세워진 프레임을 보며 느끼는 공감각은 실재하는 것에 대한 다원적 인식을 끌어낸다. 건축가 김세진은 계층의 속성을 직시한다. 단을 구성하는 수평과 수직면을 과감히 없애고, 둥근 점을 레이어로 연이었다. 그러자 시점에 따라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견고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위치와 시선에 따라 사뭇 달라지는 사회의 모습을 표현했다.
연진영 작가는 콘크리트 공간 안에 하늘색의 거대한 풍선 의자를 놓아 낯설고도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한 공간에서 뜻밖의 재료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새로운 세대의 출현과 함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의 미덕과 닮아있다. 미술관은 기획의 의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어느 때보다 포용성이 필요한 시기에 공동체의 화합과 소통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한 전시입니다. 사회적 문제를 관객이 새로운 차원에서 미술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공존을 위한 소통의 길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했어요. 소다미술관은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까지 개최한 전시의 특징은 ‘함께 사는 우리’라는 테마입니다. 예술가는 사회 현상을 좀 더 극적으로 느끼는 사람이에요. 미술관이란 건 세상을 향해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를 외치고 보여주는 곳이에요”
미술관 입구에 있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니 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컨테이너와 지붕 없는 야외전시장, 탁 트인 잔디광장이 한눈에 보인다. 소다미술관의 자랑은 또 있다. 전시마다 전시 주제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술관과 가까운 책방을 연계해 지역과 소통한다. ‘질문하는 그림책’을 추천하고 있다. 함께한 책방은 오이책방, 서른책방, 오평 등 지역의 작은 독립서점이다.
“소다미술관은 예술의 담을 없애고 문턱을 낮춰 누구나 예술을 쉽게 전달하려고 해요. 개관 당시에는 70%가 타 도시 관람객이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은 화성시민의 참여가 50%로 높아졌어요”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적극 소통해 온 소다미술관은 화성시의 자랑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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