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베트남 피아니스트의 애이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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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작가

중학교 국어 시간에 외우듯이 배운 표현이 있다. 바로 애이불비(哀而不悲). 마음이 슬퍼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선생님은 이게 한국 예술의 정수이자 본질이라고 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묵묵히 견디며 속으로 삭이는 태도. 그 이면에는 한국인 고유의 한(恨)이 있다며 외국인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그땐 그러려니 했고 시험 답안에도 그렇게 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난 이를 믿지 않게 됐다. 오히려 냄비 근성 같은 표현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한국인은 후끈 달아올랐다가 금세 식기 일쑤였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 역시 속으로 삭이기보다는 겉으로 터뜨리는 게 더 흔했다.

예술도 그런 게 주류다. ‘어때? 이래도 안 울 거야? 울어!’라고 강요하는 듯한 신파 속성을 빼놓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중음악 역시 구성지게 꺾는 트로트, 신나게 한판 벌이는 댄스, 감동의 끝을 보여주려 하는 발라드 등이 중심이다. 소위 예술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이를 외면하고 이따금 경멸의 시선도 보내지만, 한국인의 보편적인 취향을 생각하면 오히려 유난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허세나 허영 같다고나 할까?

클래식 음악회도 비슷하다. 난 한국인 연주자 상당수에게서 고양과 과장의 정서를 느낀다. 테크닉이 두드러지는 대목은 한껏 과시적으로, 화려한 대목은 기세 좋게 폭발적으로, 서정적인 대목은 가히 흐느끼는 수준으로. 자신의 예술세계에 완벽히 몰입한 듯 잔뜩 찌푸린 미간과 격정적인 몸짓은 덤이다. 어제(16일) 한 방 맞았다.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의 리사이틀에서. 그의 음악은 내가 어릴 때 배운 애이불비 그 자체였다. 음 하나하나에 한이 밴 것처럼 느껴지기조차 했다. 이날 그는 쇼팽, 라벨, 드뷔시, 프랑크를 연주했는데 모두 익히 들어온 것과는 결이 달랐다. 자기만의 정서와 해석, 오랜 조탁이 어우러져야만 나올 수 있는 숙성된 연주였다. 무대 위, 사인회장에서 본 그의 태도와 표정 또한 담담하고 조용했다.

이쯤에서 나는 신파의 유혹에 빠진다. 그의 배경 때문이다. 당 타이 손은 1958년생 베트남인으로 1955~75년에 벌어진 베트남전쟁을 온전히 겪었다. 그의 유년기, 청소년기는 드라마 못지않은 극적인 위험과 가난으로 가득하다.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벗어나 제대로 음악 공부를 하게 된 건 전쟁이 끝난 이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소련으로 유학을 떠났고 1980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연주였다. 모든 음에 애잔한 슬픔이 묻어 있었는데 이는 품격, 우아함 같은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온갖 고통을 인내하고 삭임으로써 빚어낸 어떤 고귀한 결정체 같았다. 글로는 차마 설명하기 어렵다.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의 배경을 거론하며 ‘삶이 느껴졌어!’라고 호들갑 떨 수밖에 없는데 어딘지 신파 같아서 미안하고 머쓱한 마음이다.

홍형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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