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우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크게 발생하며 국민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피치 못할 각자의 사정으로 반지하 집에 거주하던 전국 32만여가구의 국민은 이제 앞으로 내가 살 집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됐다.
이 와중에 수해복구 현장에 나갔던 한 국회의원은 ‘기우제’를 연상케 하는 실언을 했다. 나란히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 거대 양당은 당내 ‘집안싸움’을 해결하기는커녕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대로변 싸움’으로 확장하는 형국이다.
공감하지 못하고 절박하지 않은 태도, 민심과 함께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자세는 국민의 실망과 좌절을 더 키우고 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역대 최저 수준의 투표율로 정치에 실망한 민심을 표현했다. 직전 7회 지방선거 투표율 60.2%와 비교해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무려 10%p 가량 하락한 50.9%에 머물렀고, 이는 전체 유권자 4천400만여명 중 2천200만명의 인원만 투표에 응한 것이다. 원인에 대한 분석이 분분하지만 요약하면 적극적 정치 참여의 효능감에 대한 국민의 실망 즉, ‘정치에 대한 국민의 외면’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오히려 더 공고화된 지역주의와 일부 극렬 팬덤 정치의 반작용, 협치와 조정은 실종되고 서로 발목 잡기와 비난만 남은 현재의 정치 지형은 여야의 승패를 떠나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이 표출했던 민심 이반 현상을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는 듯하다.
설령 국민이 정치를 외면하더라도, 정치는 국민을 외면하면 안 된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여의도 정치가 보이는 행태는 오히려 이 반대의 상황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정치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당장 2년 후로 다가온 총선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로 구성된 국민을 위한 세심한 정책기반의 민생회복이다.
당장 살 곳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32만 반지하 가구의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정치권에서 외면돼 왔다. 또한 68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상시결식 아동,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리는 약 200만명의 노인, 매년 일터에서 일하다 안타깝게 사망하는 2천여명의 노동자. 그동안 여의도가 외면했던 이 숫자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고민, 그리고 정책 개발을 실시해야 한다.
노벨 문학상의 포르투갈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정부와 권력에 실망한 시민들이 투표 거부를 통해 그들의 민심을 표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정해진 후보 몇 명의 이름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정치인에게는 가장 큰 압박인 동시에 자유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에도 들어맞는다는 것이 작가의 의중이다.
국민이 ‘그 누구도 선택하지 못하는’ 정치판을 만든 책임에서 물론 자유롭지 못한 국회의원의 한 명으로서 소모적인 논쟁과 발목 잡기, 남 탓은 이제 그만하고 여의도의 정치가 국민을 위한 논의의 장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성과를 이뤄내는 것’이라는 정세균 전 총리의 말씀을 옮겨본다. 협치가 가능한 대화 파트너로서 상대를 인정하고 국정을 운영해 국민의 외면을 신뢰로 다시 회복하는 정치가 되길 소망한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