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이 사실인지 아닌지 팩트체크하는 것이 ‘사실판단’이다. 그리고 누구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고, 무작위로 뽑은 표본의 평균은 표본이 커질수록 모집단의 평균과 가까워진다는 ‘대수의 법칙’도 누구나 인정하는 통계적 사실이다.
반면 어떤 대상이나 사건이 아름다운지, 도덕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가치판단’이다. 내가 인어 조각상을 아름답게 본다고 해서 모든 이가 똑같이 아름답게 느끼진 않는다. 대체로 비슷하겠지만, 사람마다 문화권마다 미적· 윤리적 가치의 기준과 평가는 조금씩 다르다.
과학적 ‘사실판단’과 인문학적 ‘가치판단’은 다르다. 이따금 정치인이 대중을 현혹할 때,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교묘히 이용한다. ‘네가 빵을 훔쳐 갔느냐 아니냐’라는 ‘사실’을 논쟁하다 갑자기 “배고픈 이를 위해 빵을 훔친 것은 착한 일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가치’로 옮긴다.
훔친 것이 아니라면 배고픈 이에게 빵 주는 것은 선한 일이다. 그런데 처음 논쟁의 시작은 이쪽이 아니었다. ‘사실 논쟁’을 ‘가치논쟁’으로 슬며시 옮긴 데에 교활함이 숨어있다. 정치꾼은 연단 앞으로 나아가 착한 역할을 하는 자리를 선점한다. 착한 행동은 남에게 하라고 시키고 자신은 착한 말만 팔아 잇속을 챙긴다.
서서히 ‘네가 빵을 훔쳐 갔냐’는 사실 논쟁은 뒷전으로 가고, “배고픈 이를 위해 빵을 훔친 것이 착한 일이냐”는 가치논쟁이 앞으로 나온다. 판단의 대상이 전혀 다른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헷갈리게 하여 속이는 것이다. 두 영역의 판단은 따로 묻고, 따로 답해야 한다.
‘귀순 어민을 강제로 북송한 사실이 있느냐 아니냐’고 사실판단을 묻는데, 그 대답은 하지도 않고 돌연 “16명이나 죽인 흉악범을 한국민과 같이 살게 두는 것이 좋겠냐 아니면 추방하는 게 좋겠냐”며 별도의 화제로 감정을 자극하며 가치판단으로 방향을 유도한다.
게다가 흉악범이란 근거에 대한 객관적 사실 확인도 없이 우선 흉악범으로 단정한다. 그리곤 ‘흉악범이라 나쁘다’라는 주관적 가치판단을 들이댄다. ‘강제북송이냐 아니냐’를 묻는데 답은 없이 “흉악범이라 위험하다”로 질문의 본질을 왜곡하고, 심리적 압박으로 반문하는 셈이다.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은 사진이나 증거로 검증되지만, 선과 미 같은 가치는 내면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꺼내놓고 비교하는 게 어려우므로, 교활한 이들은 사실판단을 가치판단으로 호도해서 순박한 국민을 때때로 바보로 만든다.
이흥우 해반문화사랑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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