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인생 3막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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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

나이 60세에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여성이 있다. 그런데 그 데뷔작으로 뮤지컬 분야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작곡상을 받았다. 놀랍도록 성공적인 인생 재도전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1980년대의 팝 아이콘이었던 ‘신디 로퍼’라는 것이다.

1985년 ‘She's So Unusual’로 그래미상 5개 부문을 휩쓸었고 앨범 한 개에 담긴 4곡이 빌보드 싱글 톱에 오른 싱어송 라이터인 신디 로퍼가 30년 만에 뮤지컬 작곡가로 길을 바꿔 단숨에 토니상 6개를 휩쓰는 흥행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뮤지컬 ‘킹키부츠’! 열일곱살에 무작정 가출해 음악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녀의 역경 속의 성공 스토리와 닮은 뮤지컬이다.

망해 가는 신발 공장을 물려받은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만난 드랙퀸(여장 남성)의 타고난 디자인 감각을 빌려 남성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단단한 강철굽의 킹키부츠를 개발해 내는 이야기인데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다운 성공과 희망 메시지가 극 전체를 감싸고 있다. 거기에 작사와 작곡을 맡은 신디 로퍼의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음악이 자칫 교훈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완성시켜 준다. 실패를 극복하는 젊은 패기가 가득한 뮤지컬 ‘킹키부츠’는 그래서 최근 삶이 고단한 우리나라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년 전,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연극배우인 박정자 선생님의 연극 인생을 회고하는 1인극 ‘노래처럼 말해 줘’를 연출하면서 물리적인 나이가 사람의 실질적인 에너지와 감각, 건강 상태를 규정할 수 없음을 실감한 경험이 있다. 당시 78세의 여배우는 여전히 젊게 설렜고 여전히 열정적이었고 여전히 강렬했고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힘이 넘쳤다. 매일 긴밀하게 함께 연습할 때마다 속으로 저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결론은 정신력과 자기 확신의 산물이라는 거였다. 함께 작업하는 기간 동안 박정자 배우는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나이와 시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고 배우로서 실존적이고 초월적인 자아로 일상마저도 충실했다. 새로운 존재론이었다.

최근에 창작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계 및 대중문화 관련 직업의 특성인 무정년, 무은퇴가 주목 받고 있다. 70대에 글로벌 무대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원로들의 행렬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15년 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이르고 그 가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란다.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60세를 넘기면서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재능에 도전해 객관적인 결실을 얻는 인생 3모작의 전문가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앙코르 커리어! 미국의 은퇴설계 지원 비영리단체 시빅 벤처스의 창시자 마크 프리드먼 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50세를 기점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해 75세까지 25년은 더 일하게 될 것이고 퇴직자들은 일로부터의 해방(Freedom form work)’이 아닌 ‘일할 자유(Freedom to work)’를 원한다면서 앙코르 커리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최근에 문화계에서 증명되는 인생 2모작, 인생 3모작의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 전반의 노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에 대한 희망적인 단서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도 어느새 중장년층의 은퇴 후 남은 반평생의 잉여 시간이 사회적 부담과 책임이 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했다. 선진국처럼 앙코르 커리어에 대한 노년의 사회적 제도와 정책이 본격화돼야 하는 시점이다.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서울예술대 예술경영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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