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로 오염된 답답하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 맞이하는 봄이라 더욱 귀하다.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회생 능력은 우리에게 실증적인 희망의 메시지다.
몇 년 전, 소박한 야외 콘서트를 제작 기획한 적이 있다. 잔디 정원에 피아노 한 대 얹고 초록빛 나무들 가지에 촛불을 밝히고 마당 곳곳에 크고 작은 촛대로 자연 조명을 만들고 관객들에게도 향초를 나눠 줘 해질녘 촛불을 밝히며 다 함께 노래도 불렀다. 청명한 하늘에 그날 따라 무지개가 뜨고 새는 날고 오후 햇살은 따사롭고 그러다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또 밤을 맞으며 4시간 동안의 콘서트는 마무리됐다.
자연과 무척 어울리는 목소리의 임태경 콘서트라 더 감미로웠지만 자연 풍경 속에 놓인 관객 한 명 한 명이 다 예술적인 오브제였다. ‘TK SOUL THERAPY’ 콘서트라는 이름처럼 그날의 관객들은 콘서트를 즐기는 것 이상의 정서적인 감흥을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하며 창조 작업의 동반자가 돼 줬다.
아이슬란드를 상징하는 록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는 그들이 만든 희망어로 노래한다. 그들의 무대는 아이슬란드 계곡, 들판, 어디든지 자연 그 자체이고 그들이 야외 콘서트를 통해 전하는 대자연의 소리와 풍경은 언어와 멜로디 이상의 감동으로 그들의 음악을 완성시킨다.
한국의 전통 연희를 지탱해 오던 마당의 멍석문화는 또 다른 공연 창조의 장이었다. 우리 연극의 뿌리인 굿은 열린 마당을 무대 삼아 관객과 함께 어우러진 총체 예술로 방방곡곡 공동의 희로애락을 달랬다.
오래 전 슬로바키아 구 시가지를 산책하다가 발견한 골목 어귀에 놓인 피아노 한 대와 그 피아노를 자유롭게 연주하던 소녀, 프라하 거리에서 만난 줄 인형 연주가 뛰어났던 원로 거리 예술가와 그 연주에 맞춰 춤추던 노부부는 내 여행의 사진첩에 영원히 자유로운 행복감으로 간직돼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고통을 거치면서 많은 무대가 사라졌다. 공연장은 물론이고 야외 공연장까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지난 3년간 관객들은 공연장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만나는 꿈의 공간으로 여기지 않게 됐고,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피했다.
그런데 더 이상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지 않고 싱그러운 봄을 맞이하게 됐다. 자연이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땅을 뚫고, 두터운 가지를 뚫고 새 생명을 잠 깨우듯이 우리도 스스로 도전적으로 자가 치유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이 봄은 문화예술 종사자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또 새로운 혁신적인 계기라고 본다. 공연장을 멈추게 했던 코로나는 랜선 콘서트를 활성화시켰고 연극과 뮤지컬의 온라인 상영을 일상화시켰다. 새로운 공연장을 탄생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공연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광장들이 새로운 공연을 창조해 줄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 야외 공연을 통해 느꼈던 일탈의 행복감을 이 봄에는 꼭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창문을 활짝 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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