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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 수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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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 수원박물관

일제 총칼 앞에서도 ‘수원의 딸’들은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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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개관한 수원특례시 영통구 이의동에 위치한 수원박물관은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박물관’으로 구성돼 수원의 역사와 문화의 체험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104년 전 3월, 온 겨레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날의 함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의식까지 변화시켰다. 폭력에 굴종하던 식민지 백성에서 독립을 갈망하는 자유민으로 거듭난 것이다. 3·1운동은 남성중심의 제도와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에 갇혀있던 우리의 여성들이 역사의 주인으로 나선 운동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외세의 간섭에 맞서 싸웠던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후 엄청난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성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았다. 1919년 ‘기미년 만세운동’은 한국 여성들이 비로소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위대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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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원의 역사와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수원역사박물관 전시장 모습. 윤원규기자

 

■ 나라를 찾기 위해 떨쳐 일어선 여성들

만세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확산되고 두 달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만세운동의 현장을 기록한 사진을 통해서도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3·1운동 당시 여성들의 활약을 살펴보기 위해 수원특례시 영통구 이의동에 위치한 수원박물관(관장 황종서)을 찾았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지역이다. 화성의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안성3·1운동기념관,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은 이를 말해준다. 독립된 기념관은 아니지만 수원박물관은 3·1운동에 관한 관련 유물이 풍부하고 연구도 활발한 박물관이다. 수원박물관은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수원여성의 독립운동’이라는 특별전을 열었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수원 기생 만세운동의 주역 김향화와 구국의 선봉에 나선 학생 이선경은 민족대표 48인의 한 분인 김세환 선생, 신흥무관학교 분교 양성중학교의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한 임면수 선생과 함께 수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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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위치한 한국서예박물관은 석문·법서·조선명필·사군자·문방사우 등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한국서예박물관 전시실 전경. 윤원규기자

 

■ 수원 기생들,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

한지에 가는 세로로 33줄로 쓴 1천350자 분량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특히 주목되는 유물이다. 이름에 나타나듯이 조선 여성들의 독립선언문이기 때문이다. 김인종을 비롯한 8명의 여성 이름이 적혀진 이 선언서는 “때는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 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동포, 동포시여 대한독립만세”라는 호소로 끝을 맺는데, 작성일자가 단기 4252년(1919) 2월이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미 여성들이 독립선언의 대열에 동참한 증거물이다.

 

수원은 정조의 개혁정신과 효심이 깃든 화성을 품고 있는 수원은 예향(藝鄕)이기도 하다. 수원예기조합이 존재했던 사실을 통해 수원의 경제적 풍요와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수원에는 기생 신분으로 일제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불렀던 의기(義妓) 김향화가 있다. “본디 경성 성장으로, 화류간의 꽃이 되어, 삼오 청춘 지냈구나, 가자가자 구경 가자, 수원산천 구경 가자, 수원이라 하는 곳도, 풍류기관 설립하여, 기생조합 이름 쫓네, 일로부터 김행화도, 그 곳 꽃이 되었세라, 검무 승무 정재춤과, 가사 시조 경성잡가, 서관소리 양금치기, 막힐 것이 바이없고, 갸름한 듯 그 얼굴에, 죽은깨가 운치 있고, 탁성이듯 그 목청은, 애원성이 구슬프며, 맵시동동 중등 키요, 성질 순화 귀엽더라.”

 

기생 김향화의 얼굴이 단아하게 느껴진다. 왜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한 논개를 ‘의기’로 부르듯이 김향화의 이름 앞에도 자연스럽게 ‘의기’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알려져 있듯이 일제의 식민지배가 시작된 1910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 10년은 일제는 일본도를 차고 말을 탄 헌병을 앞세운 무단정치로 일관했다. 만세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광분하던 때에 일경들의 가득한 수원경찰서 앞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여성이 기생 김향화이다.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김향화의 얼굴이 단아하다. 화성 행궁에서 가까운 남수리에 살았던 김향화는 1919년 3월 29일 수원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김향화가 수감되었던 서대문형무소 여성 옥사 8호 감방에는 개성 일대에서 3·1운동을 이끌었던 권애라, 이윤희, 신관빈, 파주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임명애, 그리고 천안의 유관순이 함께 수감되어 있었다. 김향화는 함께 투옥된 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며 옥살이의 고달픔을 달래주었다. 1920년 3월1일 8호 감방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은 1주년을 맞아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안타깝게도 김향화가 출옥한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의 후손도 확인되지 않아 수원박물관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하여 2009년에 비로소 대통령표창을 받고 독립운동가로 인정됐다.

 

■ “석방이 되도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데 열정을 쏟은 이동근 학예연구사는 수원의 유관순, 이선경을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수원에도 19살의 나이에 대한독립을 꿈꾸다 순국한 열사가 있습니다. 이선경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이름입니다. 이선경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갖은 고초를 치르다 순국했습니다.”

 

이선경의 활약도 유관순 못지않았다. 만세운동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후 비밀조직운동을 벌이며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지원해 주는 간호사가 되려고 준비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마침내 19세의 나이에 목숨을 잃은 여성투사 이선경이다. 이선경은 박선태 등 선배들과 더불어 비밀문서를 치마 속이나 가슴에 숨겨 대전, 청주, 안성 등지로 여러 차례에 걸쳐 전달한다. 만세운동의 행동대로 활약했던 이선경은 1920년 6월 임순남, 최문순과 함께 비밀조직인 구국민단에 참여한다.

 

구국민단은 ‘첫째, 한일합방에 반대하여 조선을 일본제국 통치하에서 이탈케 하여 독립국가를 조직할 것 둘째,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되어 있는 사람의 유족을 구조할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1920년 7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수원 읍내에 있는 삼일학교(현 매향여고)에서 만나 독립신문의 배포 등을 논의한다. 이선경을 비롯한 세 명의 여학생은 이때 상해 임시정부 적십자회에 들어가 간호원이 되어 후일 독립전쟁을 벌일 때 역할을 다하기로 결의한다.

 

삼엄한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활동하던 1920년 8월 이선경은 박선태, 이득수, 임순남 등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지만 “석방이 되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라고 당차게 주장한다. 1921년 4월, 박선태와 이득수는 징역 2년을 언도 받고, 이선경을 비롯한 여학생은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언도 받았다. 구류 8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나 이선경은 일제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석방된 지 9일 만에 열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선경은 수원박물관의 노력으로 2012년 3월 건국훈장 애국장이 서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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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남문시장 거리를 거닐며 당시 남문의 중앙극장, 예쁘다 양장점, 천덕상회, 화춘옥 등의 상점을 둘러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 독립운동가들이 못다 이룬 꿈을 꾸자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204만6천938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가 7천508명, 부상자 1만5천849명, 수감자가 4만6천306명이나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국내외에서의 독립운동으로 서훈을 받은 분들은 겨우 1만8천명이다. 이중에서 여성은 400명이 되지 않는다. 김향화, 정부와 관계기관이 좀 더 적극 나서서 독립운동에 헌신했음에도 평가를 받지 못하는 숨겨진 유공자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104년 전 3월, 횃불이 오르고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던 팔달산과 방화수류정, 화성행궁을 둘러보며 다시 김향화와 이선경을 비롯한 수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수원에서 처음 만세를 부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김향화가 동료들과 만세를 부른 화성행궁 앞에도 3·1운동을 알리는 작은 기념물이라도 세우면 좋을 것 같다. 독립운동가들의 피로 광복을 맞이했으나 여전히 분단된 현실에 놓여있다. 독립운동가들이 못다 이룬 미완의 꿈은 통일된 조국이다. 꽃샘추위가 매섭지만 봄이 달려오고 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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