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은 멈췄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려는 굳건한 의지가 건축물에 충실히 담겨 있다. 외적으로부터 성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옹성처럼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당당하게 둘러싸며 여러 나라의 국기가 게양돼 있다. 1950년 6월25일에 일어난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으로 군대와 의료진을 파견한 나라는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튀르키예, 필리핀,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독일까지 22개국이다.
■ 목숨을 바쳐 지켜낸 자유와 평화
6.25전쟁부터 최근까지 군에서 사용하던 비행기를 비롯해 전차, 함선에 장착한 기관총 같은 대형의 무기 16점이 전시돼 있는 야외전시장에서 자유와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 지키는 것임을 깨닫는다. 5인치 2연장 함포, 3인치 단연장 함포, 40㎜ 2연장 함포, 105㎜ 곡사포, T-33A 제트기, M48A2C 전차, 8인치 곡사포, M577 지휘용 장갑차, T33A항공기, 해병대가 사용한 LVT 수륙용 장갑차도 있다. 몇 계단을 오르다 만나게 되는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의 ‘우리의 소원’ 노래비는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건립취지문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려는 시민들의 단단한 의지를 확인한다.
“동두천시민은 6.25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온 국민의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안보의 요충지이며 경기의 소금강인 아름다운 소요산 기슭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건립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고귀한 참 뜻을 영원히 간직하는 한편 후손에게 전하고자 본 박물관을 건립하게 됐습니다.”
박물관 출입구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빙긋 미소를 짓는다. ‘벨기에 오줌 누는 소년상’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벨기에 용사들의 기부금으로 건립된 것이다. 박물관 곳곳에서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전시물을 만나게 된다. 2002년에 개관해 현재 21주년을 맞이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작은 변화의 새바람이 불고 있다. 출입구 공간에 친환경 실내 휴식공간 ‘스마트가든’이 조성된 것이다. 산림청 국고보조사업으로 실행된 ‘스마트가든’은 식물 자동화 관리기술을 활용해 휴게공간을 친환경적으로 디자인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실내 공기를 맑게 하는 사업이다. 비록 작지만 박물관이 변화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것이 전쟁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국군 장병의 힘찬 몸짓과 세계 평화를 표현한 상징물이다.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싸워 쟁취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1층 실감콘텐츠 체험실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공간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침략군 비행기를 겨냥해 천으로 만든 공을 던져 맞추면 비행기가 파괴되면서 그 위로 숫자가 나타난다. 그 숫자는 관람객이 구해낸 사람의 수이다. 성인 관람객들도 박물관 로비에서 전투기를 조정하는 비행사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2층 주전시실은 1950년 6월25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한 22개 나라들이 전쟁 당시 무슨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알려주는 공간이다. 파견한 나라 별로 병력부터 임무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전시한 것이 돋보인다. 군복을 입은 군인의 모형을 비롯해 주요 장비, 참전 규모와 주요 전투까지 참전국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6.25 전쟁이 벌어진 6월이다. 그래서인지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평소보다 많다.
■ 동두천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세워진 까닭?
1950년 7월19일 동두천에 이동병원이 진료를 시작한다. 부상당한 국군과 유엔군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르웨이 적십자가 편성한 83명의 요원들은 민간인을 위해 외래환자진료소도 운영한다. 한편 덴마크는 최신 의료시설과 의약품, 의료진을 갖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한다. 1947년 8월에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 인도 역시 의료부대를 파견하여 야전병원을 운영하며 부상자를 치료한다. 이탈리아는 유엔 비회원국이지만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했다.
동두천시가 소요산 자락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설립한 까닭이 궁금하다. 동두천은 언제부터 군사도시가 됐을까?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1952년에 미군 제7사단이 동두천에 주둔하면서 군사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군사도시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그늘도 엄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군대가 도시의 발전과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계단을 오르며 벽면을 채운 흑백사진을 살펴본다. 짐작하듯이 사진은 전시물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실을 정직하게 알려준다. 노르웨이 의료진의 활동상을 담은 사진첩은 전쟁의 참상과 생명의 소중함을 웅변해준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맺어진 휴전협정의 순간을 기록한 흑백사진은 오랫동안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성이 멈춘 지 70년 만에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와 경제화를 동시에 이룩하는 기적을 이뤘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동두천은 수많은 생명을 구한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도시라는 사실이다. ‘한탄 이호왕 박사 기념관’은 또 하나의 역사이다. 의학과 미생물학을 전공한 이호왕 박사는 고려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동두천 송내동에 연구실을 두고 1976년 한국형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다. 동두천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 박사는 WHO 유행성출혈열연구협력센터 소장과 한탄생명과학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다.
남북한 520만명이 희생될 만큼 한국전쟁은 비참했다. 특히 민간인의 사망은 전쟁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산가족이 1천만명에 달한다는 사실도 가슴 저리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러나 세계는 다시 양분되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남북의 대결 양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철없는 어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전쟁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정녕 몰라서 하는 말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남북 역시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휴전이 아니라 전쟁을 멈춘 상태 곧 정전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분단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한 순간도 자유와 평화, 안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 가꾸고 지켜야할 자유와 평화의 동산
4층 기획전시실에 ‘제6회 아트플러스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동두천지역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의 회화 작품에서 자유와 평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새롭게 단장한 휴게실에서 국군과 유엔군, 민간인들을 치료하던 야전병원이 있던 역사적 현장을 바라본다. 70년 전의 삭막한 풍경과 현재의 풍요로운 풍경을 대조해 보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유와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당시 이름도 몰랐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인들이 감탄하며 바라보는 나라로 우뚝 섰다.
한편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경기소금강이라 불리는 소요산(587.5m) 자락에 있다. 고승 원효대사를 비롯하여 매월당 김시습,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같은 명사들이 이 산자락을 자주 ‘소요’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답고 유서 깊은 소요산 기슭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과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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