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3일 개통된 중부고속도로가 처음 논의될 때는 양평을 경유하는 노선을 검토하던 중 당시의 이천 출신 무소불위의 실력자가 이천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당시의 건설부(국토부의 전신) 간부인 집안 어른이 말씀하곤 했다. 그 결과 여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뒤처진 이천이 여주보다 먼저 시가 됐다.
2009년 7월15일 개통한 서울양양고속도로는 1990년 초에는 동서고속도로로 알려졌으며 광주시 퇴촌을 거쳐 강하면 성덕리를 통과해 강상면 신화리에 IC가 개설되게 전국지도에 표시돼 있었고 보상이 된다는 소문이 날 무렵 춘천 출신 정계 막후 실력자에 의해 1979년 말 현재의 노선으로 변경돼 개통한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양평 사람 60대 정도의 연령만 돼도 모두 기억할 것이다.
현재의 하남 양평 고속도로는 2008년 한신공영 등 6개 민자사업자들이 경기도에 사업을 제안했으나 재무성 부족으로 반려된 바 있다. 당시 추진 주체의 이야기는 한화콘도 뒤편으로 연결돼 한화가 민자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를 원했으나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투자를 미뤄 왔던 것이다.
2017년 1월 국토부의 고속도로 5개년 계획(2016~2020년)에 포함돼 2019년 3월 제1회 예비타당성조사대상 사업자에 선정되자 전임 군수가 불철주야 노력해 예비타당성 검토에서 통과된 사실은 양평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뒤이어 2020년 4월15일 총선에서 선출된 양평 출신 국회의원이 국회 전반기 농해수위에 배치됐다가 후반기에 국토교통위에 배정 받아 도로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양평의 실정을 누구보다도 반영하기 수월해 확정된 변경안이 현재 정쟁의 빌미가 돼버린 것이다.
정쟁의 빌미가 된 양평군 강상면은 김건희 여사 부친의 고향이며 현재도 친척들이 거주하고 있다. 원안으로 가면 양평 전 군수의 토지도 있고 김 여사 모친의 고향이어서 원안 주변에도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가 된 하남 양평 고속도로의 개설 목적은 민자 유치가 됐든 국가 재정사업이 됐든 모두 6번 국도 교통정체 해소에 있었던 것이다. 현재 국토부가 발표한 하남, 광주, 강하, 강상종점 노선은 6번 국도 정체가 일거에 해결되고 양평에는 진정으로 필요한 고속도로가 되는 것이다. 수도 서울의 위성도시인 양평은 행정과 산업 중심인 서울을 가기 편한 노선이 돼야 하고 국가적으로도 전체 교통망 연결에 지장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양평을 지나가는 고속도로는 세 개 노선이 있지만 동서고속도로는 서쪽 끝자락인 서종을 지나가고 제2영동고속도로는 양평의 맨 끝쪽인 양동을 지나가며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창원에서 출발해 포천을 향하고 있어 양평 외곽으로 변죽만 울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정쟁을 떨어버리고 진정으로 양평에 필요한 고속도로로 생각되는 도로가 개설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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