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한국에서 운전을 하다가 앞차가 ‘차별 금지법 반대’라는 슬로건의 스티커를 자랑스럽게 붙이고 다니는 것을 봤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차별 금지법’이란 사회적 약자와 성소수자 등을 포괄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에선 2006년 처음으로 비슷한 법안이 발의된 이후로 아직도 입법화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신 ‘장애인 차별 금지법’과 ‘성차별 금지법’ 같은 개별적인 차별 금지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별법이기에 모든 종류의 차별을 법으로 막아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대표적으로 성소수자들은 대한민국에서 감당하기 힘든 차별과 혐오를 받아도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성소수자를 배려하는 병원과 진료소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특히 트랜스젠더) 진료를 받을 권리조차 불안정하다. 이렇듯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는 위험한 나라인 한국을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다르게 영국 국민들은 2010년부터 아홉 가지 개별적 차별 금지법을 통합한 ‘평등법’ 아래 보호받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에 평등법까지 존재하니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없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실제로 경험한 영국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법의 유무는 실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 정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분법적 성별에 속하지 않는 성소수자나,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를 겨냥하는 혐오는 정도의 차이일 뿐 영국과 미국에서도 여전히 만연한다.
실제로 퀴어 혐오로 인해 일어난 미국의 증오범죄를 예를 들어보자.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는 본인을 여성도 남성도 아닌 ‘에이젠더’라고 정의하는 한 청소년이 외모가 생물학적 성별인 남성으로 보임에도 여성의 치마를 입고 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앞에 승차하던 다른 소년이 라이터로 옷에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다. 놀라운 사건이지만 이는 너무나 많은 성소수자를 겨냥한 증오범죄 사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퀴어들을 향한 합당치 못한 차별은 이렇게 리버럴한 서양 국가에서조차 적지 않다. 더 무서운 것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도 증오범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의견의 대부분은 이 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그들의 혐오를 표현할 자유를 억압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자신들을 오히려 역차별한다는 주장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회적 약자들이 이 법을 남용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정 종교인들은 이 법이 ‘관습’에 반하는 건강하지 못한 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한국인에게 대놓고 동양인 차별을 하는 백인을 봐도 그들은 그저 관습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다. 또 국제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차별을 당연시하는 현재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은 지금 갖고 있는 소프트파워의 국제적 인기도 결국 잃게 될 것이다. 외국인이 방문하거나 거주하기에 안전하지 않은 국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천년 동안 인간의 역사가 알려주듯 권위를 가진 한 인간이 공동체에 잘못된 두려움을 조성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수단은 한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숨길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대한민국에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조금이라도 평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권위자들이 많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지도자들도 잘못이지만 공포의 근본적 이유를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국민의 무지함도 큰 잘못이다. 영국 정부는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타기팅이 잘못된 무지한 두려움을 혐오와 차별의 정당성으로 이용할 것인가? 이제는 시대에 맞춰 많은 것을 바꿔 나가야 할 때다. 국민 개개인이 더 공부하고 젠더 감수성을 길러 진심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당당하게 차별을 금지하는 나라가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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