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선택 아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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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청운대 교수

정부가 1인당 5천만원인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이지 않은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새마을금고 사태를 계기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조정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으로 급격한 자금 쏠림과 건전성 우려, 예금 보험료 증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 예금자보호제도 정비를 위해 활동해 온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1일 최종 회의에서 △현행 유지 △단계적 상향 △일부 예금 별도 한도 적용 등 여러 방안을 두고 논의한 결과, 현행 유지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는 잘못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고객의 금융자산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예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돌려주는 제도를 말한다.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1월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상향 조정된 이후 23년 동안 동일하게 유지돼 왔으나 소비자 보호 실효성을 두고 줄곧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지난 3월 SVB 파산에 따른 뱅크런(Bank-run·대규모 예금인출)을 계기로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금융위원회와 예보도 우리나라 경제 현실과 규모에 맞게 보호한도, 목표기금, 예보요율 등 예금보험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검토를 추진해 왔다.

 

실제로 2022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 비율은 1.2배로 미국(3.3배), 영국(2.3배), 일본(2.3배), 독일(2.2배)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기준(1인당 GDP의 1~2배)을 간신히 맞추는 수준이다.

금액으로 치면 미국은 25만달러(약 3억4천만원), 영국 8만5천파운드(약 1억4천만원), 일본 1천만엔(약 1억원), 독일·프랑스·이탈리아는 10만유로(약 1억4천만원)로 모두 1억원을 상회한다. 중국과 홍콩도 1억원에 근접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역시 지난 6월 기존 7만5천에서 10만싱가포르달러(약 1억원)로 보호한도를 높이겠다고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예금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만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도 확대에 따른 불이익이 예상되는 은행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경제 규모와 금융소비자 편익에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선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 확산으로 유사시 뱅크런 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진 요즘, 낮은 수준의 예금자보호는 오히려 시스템 리스크 유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3년째 5천만원에 머물러 있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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