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현실 외면한 정책… ‘인턴·전공의 정원 감축’ 능사 아냐 [집중취재]

道 인구 많지만 응급의료기관은 ‘태부족’
경기 북부권 의료 공백 심각… 대책 시급
강제 정원 조정 아닌 신입 의사 양성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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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 병원이 운영 중인 경기남부건역외상센터 전경. 경기일보DB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졌다. ‘고래’는 서울과 비수도권, ‘새우’는 경기도와 인천이다.

 

최근 정부가 필수의료 대책으로 수도권·비수도권 인턴 및 전공의 배치 비중을 6:4에서 5:5로 조정한다고 밝히면서 경기·인천권이 최대 피해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계에선 강제적인 정원 조정이 아닌, 근본적인 신입 의사 양성책과 지역 맞춤형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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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엄민서기자

 

■ ‘신입 의사’ 인턴·전공의, 수도권에서 1천500명 감축 전망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전국 26개 전문학회에 전공의 정원 책정 방향을 전달하고 의견 수렴을 진행한 바 있다. 주요 골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공의 배정 비율을 기존 6:4에서 5:5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 일부는 볼멘소리를 냈다. 수도권의 경우엔 “안 그래도 부족한 의사 인력을 비수도권에 추가 배치하긴 어렵다”는 입장이고, 비수도권의 경우엔 “제아무리 의사 정원을 늘려도 지원자가 없어 번번이 미달인 만큼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비수도권의 지역의료·필수의료 붕괴가 가속화 하는 만큼 5:5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기조다. 11월 중순까지 최종 비율을 확정하고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께에는 적용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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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엄민서기자

 

인구 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경기·인천권은 이미 전국에서 ‘인구 1만명 당 인턴 및 전공의 수’가 가장 적은 실정이다. 여기에 수도권 정원 감축마저 실현된다면 피해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지역 의료계에선 인턴 240명, 전공의 1천256명의 감축을 점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저출생·고령화, 의료 이용 형태 변화 등으로 서울권의 ‘의사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수도권 인력 감소는 실질적으로 경기·인천권에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쉽게 말해 수도권 T.O가 줄더라도 서울권 병원의 인턴·전문의 모집에는 지원자가 몰릴 테고, 인접한 경기·인천권 병원들만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뜻이다.

 

복지부의 결정까지 대략 한 달의 시간이 남은 상황. 이번 정원 조정안을 두고 수도권 안에서 경기·인천권의 ‘역차별’이라며 대안을 찾아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응급·외상 진료 많은 경기·인천, 의사는 서울의 ½

 

이 같은 주장은 비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 인력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수도권의 욕심이자 이기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경인권 의료계에선 지역별 ‘응급병상 및 환자 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같은 수도권이라고 해도 경기·인천은 서울과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령 인구가 많고 의료 인프라가 미흡한 경기북부권의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인 인구 수만 봐도 경인권은 서울 등 타 지역보다 많지만, 특히 신속 대응이 생명인 응급·외상 진료 건수가 타 지역보다 월등히 많다. 따라서 인턴·전문의가 감축 될 게 아니라 오히려 해마다 안정적으로 수급·배치돼야 한다고 본다.

 

중앙응급의료센터의 ‘2021 응급의료 통계연보’를 통해 분석된 인구 100만명당 응급의료기관 수. 경기도가 4.9개소로 최하 수준을 기록했다. 자료 발췌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 응급의료 통계연보’를 보면 인구 100만명당 응급의료기관 수는 경기도가 4.9개소로 가장 적었다. 상위 1위인 전남(20.2개소)과는 약 5배, ▲강원(14.3개) ▲광주(13.9개소) ▲경북(11.8개소) ▲전북·경남(각 11.2개소)과도 약 3배의 차이다. 그만큼 경기도의 인구가 많고, 응급의료기관 수가 부족하다고 풀이된다.

 

더욱이 인구 10만명당 평균 실 근무하는 응급실 전담 전문의 또한 경기도가 3.0명으로 최하위였다. 비수도권인 제주(6.9명), 광주(6.5명), 강원(6.0명) 등보다도 절반가량 부족한 셈이다.

 

이밖에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통계 등을 살펴봐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경기·인천권에는 1천827개의 응급병상이 있지만 100병상당 인턴 수는 40.1명, 전체 환자 수는 147만5천159명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환자 1만명 당 인턴 5명이 배치된 수준이다.

 

이는 동일 수도권인 서울(환자 1만명 당 인턴 10.3명)과 비교해도 50% 정도가 부족한 편이며, 비수도권인 ▲부산·경남권(8.4명) ▲대구·경북권(6.7명) ▲강원권(5.7명) 등보다도 낮은 수치다.

 

따라서 ‘정원 감축’ 방침은 지역 의료 현실을 외면하고 ‘수도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세워진 무의미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비수도권行, 단순 정원 늘린다고 해답 아냐

 

비수도권 입장에서도 이번 복지부의 계획이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정원을 늘려도 채울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국립공주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27.2%(정원 11명 중 3명·8월 기준)만, 전북대병원·원광대병원·예수병원은 필수 진료과목 전공의를 24.7%(정원 89명 중 22명·올 전반기 기준)만 충원한 상태였다. 전반적으로 비수도권 병원들의 소아청소년과 충원율도 6.9%에 그친다.

 

이미 있는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데 앞으로 인턴·전공의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의료 서비스가 향상될지는 미지수인 대목이다.

 

더욱이 비수도권에서 의사를 배출해도, 지역에 배치해도, 그들이 지속적으로 그 안에서 ‘의사 생활’을 할지도 불분명하다. 지난 2021년 9월 지방대 육성법이 개정되면서 비수도권 의대는 정원의 40% 이상을 지역출신으로 의무 선발하게끔 바뀌었지만, 그들 모두가 ‘의사’가 된 후 ‘지역’을 지키지는 않아서다. 대표적인 원인은 미흡한 수련환경과 근로환경 등으로 경쟁률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즉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환자 수도, 병원 수도 부족한데 단순히 인턴·전공의 배정 비율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비수도권에 필수의료 확대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경기·인천은 “상생하는 방법을 발굴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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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유동수화백

 

■ “경기·인천 의료 질 저하 우려…서울-비수도권 상생방안 필요”

 

의료계에선 비수도권에 수련비용을 지원하거나 급여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환경을 개선해 ‘전공의가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적극적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경기·인천권 역시 지역 의료 기반과 의료 서비스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서울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정치권과 지자체의 관심이 필수불가결하다.

 

아주대병원을 비롯해 고대안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인천길병원, 인천성모병원, 인하대병원, 부천순천향대병원 등이 속해 있는 ‘경기·인천지역 8개 상급종합병원 협의회’는 “경기·인천 인구 증가를 감안한 지역사회 의료 환경을 위해 서울에 편중된 수도권 정원 일부 흡수하는 등의 방안이 시급한 시점”이라며 “피해는 환자들에게 가는 만큼 정치권과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비교적 규모가 큰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들이 경인권 역차별을 우려하고, 추후 인턴 및 전공의 부족 현상을 걱정할 정도이니 이보다 규모가 작은 여타 병원들의 심각성은 더욱 클 것이 예상된다”며 “수도권 인원이 조정되면 기존 인턴·전공의 부담이 가중되고 의료 서비스 질이 악화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지자체인 경기도 차원에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도 관계자는 “경기도 역시 ‘경기동·북부권 등의 특수성을 고려해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 8월 복지부에 전달했다”며 “수도권으로 묶이기보단 의료 취약지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큰 틀에서 논의하는 게 있다. 다만 도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음을 참고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는 필수의료 대책의 일환으로 전공의 정원 비중 조정 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다. 특정 지역을 차별하는 내용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주면 좋겠다”며 “수련의·전공의들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수도권에 60%가 집중된 만큼 이를 균형적으로 개선하자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종 내용은 11월 안에 공개한다는 방침이며, 내년도부터 적용할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복지부는 지난달 수도권 12개 병원과 비수도권 9개 병원 등과 함께 ‘2024년도 전공의 정원 배정 관련 수련병원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안내된 주요 방향은 ‘비수도권 전공의 비율 50% 배정’, ‘평균 충원율 저조·미충족 정원 규모 등 고려한 과목별 정원 조정’, ‘국립대병원과 필수의료 수행병원 등 정책적 목적 배정 확대’, ‘전공의 수련 여건 미비 기관에 대한 배정 축소 등 수련병원과 기관 효율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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