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휘문 성결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이 저출산 국가라는 것은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이라는 사실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국민의 대다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의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저출산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고 고령사회를 촉진하게 되며 지방소멸로 연계될 수 있어 대재앙이라고 부른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 고령사회와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해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했으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이 새로운 정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정책을 생각할 수 있으나 그중 하나는 국적 취득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규모가 250만명을 초과했다는 사실로부터 논의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국적을 취득하는 방식에는 선천적 취득 방식과 후천적 취득 방식이 있다. 선천적 취득 방식에는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가 있고 후천적 방식에는 인지, 귀화, 국적회복 등의 방식이 있다. 혈통주의는 부모의 혈통을 기준으로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다. 혈통주의는 동일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혈통에 의해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출생지주의는 국적을 취득하기를 희망하는 자가 국적 취득을 희망하는 국가에서 출생했을 경우 해당 국가의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국제적 추세를 보면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의 양극단을 고집하는 국가는 감소하고 있고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를 병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혈통주의에 의해 국적을 취득한다. 국제적 추세에 부응하고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인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혈통주의에서 벗어나 출생지주의를 병용하는 방식, 즉 보충적 출생지주의로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과거 참여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도입을 논의했으나 입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4월에는 법무부에 의해 국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입법 예고됐으며 여기에는 2대 이상 한국에 살고 있거나 우리와 혈통을 같이하는 영주권자의 국내 출생 자녀가 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 정부가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하려면 강한 혈통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국민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심도 있게 논의한 후 국민적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또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복수국적, 병역, 참정권 등 다수의 쟁점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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