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의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이름 짓기 추진 사업이 100일간의 짧지 않은 여정 속에 마무리됐다. 100일의 여정에는 출범식부터 공포식까지 진행과정에는 많은 토의와 논쟁을 통해 이뤄졌다. 1월 18일부터 2월 19일까지 전국민을 대상으로 1개월동안 공모 과정을 거쳐 접수 마감된 결과, 홈페이지 방문자 404만여명, 새 이름 응모에 5만2천여 건이 될 정도로 예상치 못한 호응이었다. 홍보가 잘 되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만큼 국민의 관심도를 반영하는 결과였다. 이때 필자도 공모심사위원회의 추진위원회의 일원으로 한국사 전공자라는 이유로 네이밍, 홍보 관련 전문가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우리 시대에 경험하지 못한 도 명칭 공모에 역사학자로서 기록자이자 사관의 심정으로 그 과정을 하나하나 목격하기 위해서였다. 개인의 이름 하나 짓기도 어려운데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도 명칭 선정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작명과 명칭 선정 과정이다.
분도 역시 지역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모두가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수십년동안 묶은 과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을 에워싼 경기도는 너무 크다. 경기도는 31개의 시·군을 영역으로 하고 있다. 28개의 시와 3개의 군으로 이루어진 경기도의 행정 영역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필자 역시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높은 교육열을 가진 부모님 덕에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당시 영등포구 시흥2동이란 달동네에 정착한 이후, 광명시와 안산을 거쳐 지금은 양평 양동면의 골짜기에 정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40년동안 경기도 서쪽과 동북쪽을 오간 셈이다. 지금도 요양원에 계신 모친 때문에 안산을 1주일에 한번은 왕복하고 있다. 평일에도 자차로 1시간 40분이 걸린다. 그런데 경기도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하는 마음이다. 2011년에 경기도청 북부청사가 설치되었다지만 북한과의 접경지역이 많은 까닭에 경기남부보다는 모든 면에서 낙후된 것도 현실이다.
경기도란 명칭은 원래 고려 1018년(현종 9)에 6개의 적현과 7개의 기현을 합하여 ‘경기(京畿)’라 이름한 것에서 비롯한다. 1천년의 역사성을 지닌 이름이다. 설치 목적은 수도 개경(개성)을 보위하는 목적이었다. 이후 1069년(문종 23)에 양광·교주·서해도로부터 39현을 이입해 원경기(原京畿) 13현과 합해 총 52현을 관할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러다가 1391년에 경기좌·우도로 바뀌었다. 조선의 8도체제가 완성되면서 오늘날의 경기도의 원형이 됐다.
대한민국의 도 이름들은 전라도와 경상도는 1천년, 혹은 함경도처럼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작게는 제주도의 경우처럼 70년의 역사를 지닌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명은 전통적으로 교통로상의 중요 거점이나 큰 고을을 중심으로 중앙 정부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명이 결정된 연유는 자세하지 않다. 일방적인 하향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리 할 수는 없다. 도 명칭은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자연스럽게 쓰여야 하고 오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참여형 공모전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작부터 분도와 함께 새 이름 명명을 둘러싼 명칭 논란으로 주민과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정치적으로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견된 일이지만 이러한 열띤 논쟁은 지역사회의 참여, 의사결정의 투명성, 지역 정체성과 경기북부 도민의 열망을 반영하기 위한 한 걸음일 뿐이다. 이 또한 경기북부의 지역자치와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도출된 도민들의 다양한 견해와 우려는 이 변화의 국면을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다.
앞으로도 분도와 새이름 명칭, 도청 소재지와 관련한 법적 절차 등 많은 일들이 우리의 앞길에 쌓여있다. 아래로부터의 열망을 담은 이 일을 고민하는 도정의 책임자라면 반드시 시작되어야 하고 맺듭지어야 한다. 경기북부민은 더 나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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