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친환경농업 확산

하태문 경기도농업기술원 친환경미생물연구소 친환경농업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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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서도 산골 출신인 나의 어린 시절 놀이는 낮에는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고 밤이면 반딧불이를 쫓는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 개구리, 메뚜기, 반딧불이가 사라졌다.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농업에서도 다수확을 장려했던 1970년대부터 무분별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은 해충뿐만 아니라 천적을 죽이고 생태계를 파괴했다. 화학 농법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농업인들이 자발적으로 유기농법을 실천하면서 친환경농업이 시작됐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환경 파괴와 농가경제의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정부의 친환경농업 정책이 추진됐다. 이후 2001년 ‘친환경농업 5개년 계획’이 수립되면서 친환경농업에 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생협, 학교급식, 로컬푸드 판매장 등 전문 유통업체와 매장이 생기면서 친환경 재배면적은 점점 넓어져 2020년 8만1천827ha를 기점으로 내리막 추세다.

 

친환경농법은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전을 위해 확산돼야 하지만 이를 위해 농업인들의 참여와 감성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 시장, 정책과 예산 등 시스템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친환경농업의 확산을 위해 필요한 첫 과제는 단연코 차별화된 시장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닌가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실시한 ‘2022년 친환경농업 소득조사’에 따르면 친환경 농산물 판매소득은 일반 농산물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감귤, 감자, 양파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일반농산물과 가격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낮은 품목도 있다. 생산비는 많이 드나 판매가격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친환경 공공 급식 등 일반 농산물 대비 수취 가격이 약 30% 높은 친환경 유통처에 출하되는 물량은 전체 친환경 농산물 물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기도가 운영하는 친환경 농산물 유통센터와 같은 차별화된 시장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

 

정부의 예산투자와 지원 정책의 확대도 필요하다. 친환경농업 관련 사업 중 농식품부가 추진했던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과 ‘초등 돌봄교실 과일 간식 지원사업’은 임산부와 초등학생을 둔 부모들의 호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친환경 농산물 소비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 사업이었지만 예산 삭감과 친환경농업 관련 사업이 축소돼 농가의 설 자리는 더 위태로워졌다. 2018년 이후 동결된 친환경농업직불금도 문제점이란 지적도 있다.

 

친환경농업직불금 단가는 논 기준 유기 1ha당 70만원, 무농약 50만원으로 7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프랑스는 ‘유기농업 육성 정책’에 학교, 병원 등 단체급식의 유기농 식자재 비중을 20%로 확대하고 유기 농가에 직불금과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친환경농업 확대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 유기농업 경지면적 비중이 2010년 3%에서 2022년 10.7%로 3배 이상 늘었다. 정부의 정책이 친환경농업 확산을 이끄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소비자 99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가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한 경험이 있고 구매 이유로 안정성과 건강 증진을 들었다. 반면 22%는 구매 경험이 없었는데 비싼 가격과 미미한 품질 차이, 신뢰하기 어려운 안전성 등이 이유인 것으로 조사됐다. 농산물 품질인증관리에 불신이 아직도 저변에 깔려 있다는 뜻이다. 엄격한 품질인증 관리와 친환경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보다 더 비싸게 받아야 하는 이유를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시하는 노력이 공익광고 등 여러 방법으로 전개돼야 한다.

 

더불어 농업 현장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의 차별화된 시장 부족 문제를 언급한 바 있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전국에서 친환경 공공 급식 지원 시스템이 가장 앞선 경기도에서조차 공급계약 이행률이 약 50%로 낮은 실정이다. 농업 현장에서 농산물이 제대로 생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배 적지의 북상에 따른 작목발굴과 재배 기술 개발, 돌발 병해충의 방제 기술 개발, 효과 높은 친환경 농자재 개발과 공급 등 연구개발(R&D)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친환경농업이 주는 공익적 가치를 인식하고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기농업의 근본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줄여나감으로써 토양과 생태계를 복원하고 지속가능한 농업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산업사회의 대량생산 가치가 농업에도 접목돼 양적 팽창에만 집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친환경농업은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환경을 보전하는 공익적 기능이 있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제 사과 한 개에 1만원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탄소배출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부작용이 식량 위기와 농산물 가격 급등을 부추길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어쩌면 기회일 수 있다. 반딧불이가 돌아오고 생태계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자연농법의 전환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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