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휘문 성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한국 지방정부의 살림살이는 자체적으로 징수하는 지방세와 세외수입,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이전해 주는 지방교부세, 국고보조금,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그리고 지방채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정부의 살림살이는 지출해야 하는 금액을 결정하고 수입액을 정하는 양출제입(量出制入)의 원칙과 수입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지출을 결정하는 양입제출(量入制出)의 원칙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로 들어오는 수입이 충분할 때는 양출제입의 원칙을 준수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지출해야 하는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양입제출의 원칙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이 처한 현재의 재정 여건을 고려한다면 그동안 활용했던 양출제입의 원칙에서 벗어나 양입제출의 원칙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방재정은 중앙재정과 달리 양입제출의 원칙으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결해야 할 추가적인 숙제가 있다. 지방재정에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재원이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에 의해 지방정부로 이전되는 국고보조금,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는 지출해야 하는 용도가 지정돼 있어 지방정부가 지출하고자 하는 용도로 지출할 수 없다. 지방자치제의 실시 목적이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뽑아 자기 부담에 의해 처리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주민의 복리를 증진하는 데 있다고 하면 중앙정부가 이전해 주는 재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체 재원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규모가 용도가 지정돼 내려오는 중앙정부의 이전 규모보다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지방재정 현황을 보면 지방세와 세외수입이 일반회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재정자립도가 2015년 44.20%에서 점차 하락해 2022년에는 39.73%가 됐다. 이는 지방재정의 지출 자율성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제를 재실시한 지 3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자립도가 3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지방재정의 지출 자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중앙정부는 지방재정의 낭비와 비효율성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다수의 재정관리제도를 도입해 지방재정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지방정부에 부여된 재정지출의 자율성은 재정자립도에서 보는 것처럼 30~4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다수의 재정관리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모든 정부는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재정분권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정자립도에서 보는 것처럼 개선의 정도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지방정부에 재정의 지출 자율성을 향상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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