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식 인천시 보건복지국장
내 삶의 끝에 대한 결정은 스스로 정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23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연명의료결정법이 발효된 2018년 이후 200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이 아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018년 2월 일명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제도화됐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의 생명만 연장할 뿐인 의학적 치료를 유보 혹은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살아날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고통스럽기만 한 ‘생명 연장용’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절차다.
전문가들은 연명의료 포기가 늘어나는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존엄사 문화의 확산을 꼽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을 담당하는 상담사는 “대부분 ‘의향서를 안 써두면 나중에 내 가족이 고생할 수 있다더라’는 이유로 많이 쓰러 오신다”고 전했다. 또 “방문하는 분들은 ‘나는 나중에 가만히 누워 콧줄을 한 상태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치매 걸리면 오래 살고 싶지 않다’ 등의 얘기를 하신다”며 “자녀들은 부모가 죽기 전까지 최대한의 치료를 받자고 하겠지만 그걸 원치 않는 부모들도 많다. 그런 상황이 되면 의사 전달이 잘 안 될 수 있으니 미리 의향서를 쓰겠다는 분들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인천은 지난해부터 웰다잉문화 조성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 부여와 죽음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호스피스 관련 사업을 해 왔다.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를 보조사업자로 선정해 인천시민 대상 웰빙과 웰다잉, 만성질환의 관리 등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 광고 등으로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한 홍보도 펼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각 보건소와 노인복지관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이 가능한 대상은 지역보건법에 따른 지역보건의료기관, 의료법에 따른 의료기관, 비영리법인 또는 비영리 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및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복지관 등이다.
인천시의 등록기관은 29곳으로 그중 62%를 차지하는 것이 상급 또는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이다. 존엄사의 필요성을 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고령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연명의료의향서 건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인천시는 어르신들의 접근이 용이한 노인복지관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받은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지난해 말 기준 인천시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은 약 17%에 이른다. 집 근처 노인복지관을 가보면 수많은 어르신들로 왁자지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어르신들의 건강과 행복한 노후를 위해 건강관리, 자기계발, 은퇴교육, 정보화 교육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노년기 만성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건강관리 등이 이뤄지고 있다. 인천 인구의 20%가량이 노인 인구임을 감안하면 웰다잉에 대한 열망 해소를 위해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삶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건소와 노인복지관 등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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