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로 드디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2021년 8월 저금리에서 통화 긴축으로 전환한 지 3년2개월 만에 통화 완화로 돌아선 것이다. 본격적인 피벗(통화정책 기조 전환)의 시작에 시동을 걸었다.
마지막 기준금리 인하가 2020년 5월이었으니 금리 인하만 보면 4년5개월 만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불안한 수도권 집값과 가계부채를 자극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한 이유는 그만큼 경기 침체, 성장 부진이 더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긴축 완화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금리 인하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경기 침체가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계속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은 제기됐다. 그런데도 그동안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미국의 고금리, 서울 집값 상승, 가계부채 증가 세 가지 악재가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가 2%포인트나 벌어진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금 유출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데 다행히 지난 9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빅컷(0.5%포인트 인하)하면서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줄어들어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에 숨통을 터 줬다.
무엇보다 5월부터 가파르던 서울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추석 이후 한풀 꺾이면서 한국은행이 생각하는 기준금리 인하의 조건이 충족됐다.
한국부동산원 서울 주간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을 보면 8월 0.32%까지 올라갔다가 10월 들어 0.10%까지 상승률이 줄어들었으며 7월 8천건이 넘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 역시 8월 6천건을 간신히 넘겼고 9월은 4천건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이 될 정도로 거래량도 크게 감소했다. 이 덕분에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0월4일 기준 9월 대비 1조1천307조원 감소했다.
기다리던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이제 공은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넘어왔다. 2021까지 거침없이 오르던 집값이 2022년 금리 인상으로 꺾였기 때문에 다시 금리가 내리면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시장에 팽배해 있었다. 과연 기준금리 인하가 다시 집값을 밀어 올릴 수 있을까.
먼저 과거로 돌아가 2000년 이후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로 방향을 전환했던 세 번의 금리 인하기에 한국 증시와 집값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보자.
2000년 12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시절 미국의 기준금리가 6.5%에서 1.0%로 내려오는 동안 우리나라 코스피는 504에서 669로 올랐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22년 1월 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매매가격지수 기준으로 24에서 39.2로 올랐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미국의 기준금리가 5.25%에서 0.25%로 인하하는 동안 우리나라 코스피는 1,946에서 1,124로 큰 폭으로 떨어졌으며 서울 아파트 가격은 56.9에서 59.2로 소폭 올랐다. 2020년 3월에서 2022년 3월까지 코로나 시절 미국의 기준금리가 1.25%에서 0.25%로 내려가는 동안 우리나라 코스피는 1,754에서 2,757로 크게 올랐고 서울 아파트는 77.3에서 100.1로 역시 크게 상승했다.
2000년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기 세 번 중 증시는 두 번, 서울 아파트 가격은 세 번 모두 올랐다.
물론 과거에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똑같이 상승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파트 가격이 금리 하나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공급 물량, 부동산 정책, 주택시장 분위기, 소득 대비 집값 저평가 유무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기준금리를 인하한 한국은행은 대외적인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올해 말까지는 3.25% 기준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 집값 자극을 최소화해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해야 하는 한국은행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시중은행 창구지도를 통해 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해 서울 집값 상승을 최대한 누르려 할 것이다.
미국 역시 11월 대선을 앞두고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예상처럼 올해 말까지 추가 금리 인하 없이 3.25%인 현재의 기준금리가 유지된다면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는 이미 시장에서 예상했고 일정 부분 선반영된 부분도 있으며 대출 규제도 시행되고 있어 실제 대출금리는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 시장의 수요자들이 금리 인하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단기 급등에 대한 피로감까지 맞물려 올해 말까지는 서울 집값이 자극을 받아 다시 상승 거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안정은 내년으로 넘어가면 달라질 수 있다.
새해가 돼 영업실적이 급한 시중은행이 계속 정부의 창구지도를 따라 올해와 같은 강한 대출 규제를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과 서울 입주 물량 부족, 전셋값 상승 등 상승 압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버티는 집주인들보다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이 더 불안해하는 상황이어서 예상치 못한 자극에 선호도가 높은 지역의 인기 아파트는 다시 들썩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물론 내년까지 추가로 기준금리를 내려도 미국은 3% 중반, 한국은 2% 중반의 중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코로나 시절처럼 저금리의 폭발적인 유동성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고 상승장이 아닌 아직은 등락을 거듭하는 조정구간을 통과하는 상황에서 소득 대비 여전히 높은 집값을 전국의 매수자들이 따라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올해처럼 선호 지역 인기 단지 위주로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은 당분간 부동산시장을 관통하는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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