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0. 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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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군대 내무반 모습과 군인들의 장비가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하지만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남북이 분단되고 우여곡절 끝에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다. 그러나 2년 만에 일어난 6·25전쟁으로 온 국토는 잿더미가 된다. 폐허의 나라에서 1950년대에 태어난 우리 앞 세대는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을 불과 40~50년 만에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 대국, 기술 강국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지난 50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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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풍물관에서는 저잣거리가 실제 모습으로 구성돼 있다. 다방, 대장간 등 재현된 42개 상가들의 생활 풍경을 통해 당시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 근현대 자료 7만여점을 테마로 엮은 입체형 박물관

 

우리 앞 세대가 살았던 그 시절이 궁금해 파주 헤이리를 찾았다. 헤이리 예술마을 4G 초입에 있는 붉은색 3층 건물이 ‘한국근현대사박물관’(관장 최봉권)이다. 짐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손수레를 끌고 미는 사람 형상의 조각과 ‘추억의 골목 동네 달동네’라 새긴 팻말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짐자전거부터 똥오줌을 담는 통 ‘장군’이 실려 있는 나무지게까지 1960~70년대 물건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재미있다. 1964~65년에 생산된 CT-85 경운기는 근현대사박물관의 설립 이념과 철학을 보여주는 특별한 유물이다.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에 선정된 유물인데 우리나라에 단 두 대뿐이라고 합니다. 온전한 모습을 한 유일한 경운기라고 합니다.” 최준호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며 안내문을 살펴본다. “농업 근대화의 역군이 된 경운기-낫과 지게가 전부였던 빈곤의 나라에서 1962년 경운기 도입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술 국가 대한민국이 되다.” 트랙터에 밀려났지만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경운기의 기능과 역할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근현대사 100년의 생활사관-한국근현대사박물관’이라 새긴 현판이 걸린 박물관 입구는 50년 전 과거로 들어가는 대문이다. 50여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은 매표소 옆에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1960년대 전후의 동네를 고스란히 재현한 지하 1층의 풍물관, 학교와 주변 등을 중심으로 문화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지상 1·2층의 문화관,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역사관과 추억의 소장품관은 3층에 자리 잡고 있다. 6·25전쟁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풍물관’에 들어서면 상가가 쭉 늘어선 1960년대의 저잣거리와 달동네의 생활 풍경이 실감 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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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와 안보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북한에서 제작된 삐라. 윤원규기자

 

■ 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지게와 낫, 고무신이 전부였던 빈곤의 나라, 국민소득 60달러, 찬물에 보리밥 한 덩이 말아먹고 흘린 땀이 얼마던가. 그러나 자식들 키우는 보람에 힘든 줄도 몰랐지.” 현수막에 적힌 글귀가 그 시절 부모들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삶의 흔적들이 물지게와 물통, 박으로 만든 물바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운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엄마 등에 업힌 아이는 지쳐 잠이 들었고, 지게를 진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살펴본다. ‘솜틀집-이불 꿰매 줍니다’라 쓰인 글귀와 ‘말표신발’ 광고가 붙어 있는 전봇대와 일제강점기에 사용한 우체통이 반갑다. 문득 집배원의 자전거에 걸린 우편가방 속이 궁금해진다. ‘올해는 더 일하는 해-증산·수출·건설’이라 새겨진 간판 옆에 ‘멸공방첩’ 간판이 걸려 있다. ‘투약일 3월25일 오후 7시 다 같이 쥐를 잡자!’ 한날한시에 쥐약을 놓자는 농림부 포스터의 글귀가 흥미롭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란 유명한 구호, 대통령 후보 신익희와 부통령 후보 장면의 얼굴이 실린 벽보와 ‘나라 위한 팔십 평생 합심해 또 모시자’라는 구호와 ‘리승만’, ‘리기붕’이라 적힌 벽보도 눈길을 끈다. 두 개의 벽보는 4·19혁명과 직접 관계되는 역사적 유물이다.

 

시계나 반지 같은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전당포와 만화방을 구경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던 옛 추억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검정 고무신과 빨랫방망이, 풍구, 대패, 먹통 등 옛날 물건이 가득하다. 만물상 하나를 몽땅 옮겨다 놓은 듯싶다. 약속 장소로 애용되던 ‘역마차 다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옛 노래가 들린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최갑석의 ‘고향에 찾아와도’는 1964년에 발표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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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한국근현대사박물관내 영화관을 테마로 한 전시실. 윤원규기자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소였던 금촌극장에는 국산 만화영화 ‘쾌남 홍길동’이 상영 중이다. 영화관 매표소 앞 양철통에 연탄재가 들어 있는 걸로 봐서 영화를 개봉한 시기가 겨울인 모양이다. ‘저 하늘에 슬픔이’나 ‘돌아오지 않는 해병’처럼 인기를 끌었던 작품의 포스터를 살펴본다. 그 시절 활약한 윤정희 같은 인기 영화배우가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뚝딱 만들어냈던 양장점 안을 들여다본다. ‘외상 사절’이란 글씨가 메뉴와 함께 붙어 있는 국밥집의 풍경도 연탄불처럼 따뜻하다.

 

‘점방’이라 불리던 구멍가게에 붙은 작은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랍장 위에 올려진 이불과 베개, 앉은뱅이책상에 꽂힌 몇 권의 책과 라디오, 창틀에 끼워진 학생모, 입학식 날 어머니와 함께 찍은흑백 사진이 보인다. 밥상 위에 놓인 보리쌀로 만든 개떡이 담긴 그릇이 그 시절 서민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5일마다 열리던 장날의 풍경은 언제봐도 정겹다. 두부 한 모가 15원 하던 시절, 장날은 구멍이 난 그릇을 땜질하는 땜장이도 기다리던 날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딱지만 치다가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우는 아이 곁에 놓인 시루에는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있다. 가로등이 켜진 좁고 굽은 골목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자취방이 나온다. 연탄 몇 개와 세숫대야가 놓여 있는 출입구를 지나 머리를 조심하며 작은 방안을 들여다본다. 이소룡 사진과 쌍절곤이 걸려 있는 걸 보니 이 방의 주인은 청년이다. 겨울이면 연탄가스를 걱정해야 하지만 자취방은 꿈을 키워 가던 청춘의 소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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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용품이 전시되고 있는 동네 문방구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윤원규기자

 

■ 우리의 현재 모습을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곳

 

1970년대 초등학교 앞 풍경이 펼쳐진다. 문방구와 서점, 만화방이 들어서 있는 골목에는 풀빵 장수와 번데기 장수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교과서와 상장, 학원 수강증 등이 전시돼 있는 여자상업고등학교 교무실 옆 교실에는 책상마다 타자기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노래가 전시 공간을 더욱 친숙하게 만들어 준다.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가 울려 나오는 곳은 새마을지도자의 집이다. 의자에 앉아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라는 글씨가 걸려 있는 새마을회관에도 가난을 극복하려는 열망이 가득하다. 역사관에서 고종과 김구,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까지 근현대사 주요 인물과 대통령 사진 및 관련 자료를 살펴본다. ‘추억의 소장품관’에서 1966년 금성사가 생산한 우리나라 최초 흑백 텔레비전을 발견한다. 저가 정책으로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과 경쟁하던 금성은 ‘엘지’란 이름으로 지금 세계 최고의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자제품 하나에 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비결이 들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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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2005년 우리나라의 근현대생활사 유물자료 7만여점을 집대성하여 탄생한 테마 박물관이다. 박물관전경. 윤원규기자

 

1960년대 전후의 도시를 통째로 옮겨 놓은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한 달 평균 1만여명의 관람객이 찾는 곳이다. 박물관을 천천히 돌아보면 우리의 지난날이 얼마나 궁핍했는지, 왜 졸업식 날에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었는지, 그 가난을 딛고 어떻게 기술 강국으로 성장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지난날 우리 앞 세대들이 땀과 눈물로 이룩한 성공의 비결이 담긴 추억의 물건을 거의 모두 만나 볼 수 있는 놀라운 공간이다. “우리의 옛 모습을 알아야 현재를 알 수 있습니다.” 설립자 최봉권 관장의 말처럼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통로가 되고 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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