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
블랙핑크 로제가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APT.’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외국인들 사이에 도대체 APT(아파트)가 무엇이냐는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역사는 1930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지은 미쿠니(三國) 아파트가 최초 아파트로 현재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주택법상 아파트는 5층 이상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3층인 미쿠니 아파트가 아닌 1932~1933년 지은 5층 건물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 아파트가 최초 아파트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서대문 충정로역에 가면 보이는 초록색 낡은 건축물이 바로 충정 아파트로 6·25전쟁 때는 북한군 인민재판소로 사용됐고 수복 후에는 유엔군 숙소로 쓰이기도 했다.
아무튼 두 곳 모두 100년이 다 돼도 끄떡없는 것을 보면 건축 기술이 좋은 우리나라가 재건축 허용 연한이 30년인 점은 기술적인 안정성 문제보다 새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우리의 그릇된 주거문화의 씁쓸한 한 단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1982년 이전에 지어 윤수일 아파트보다 오래된 아파트가 아직도 서울에서만 무려 6만가구나 남아 있다.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비롯해 잠실주공5단지, 압구정 현대아파트, 반포주공1단지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서울의 노후 아파트 대부분이 윤수일의 아파트보다 오래됐다. 최근 서울시의 신속 통합 기획으로 속도를 내고 있지만 추진 후 10년 이상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정비사업의 특성상 서울에서 새 아파트는 항상 부족하다.
서울은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신규 택지가 없어 기존 노후 건축물을 재건축하거나 재개발하는 정비사업이 아니면 신축 아파트 공급이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으로 2026년에는 서울의 입주 물량이 1만가구 아래로 떨어진다. 2017~2019년 4만가구 이상이 입주했음에도 아파트 가격이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서울의 입주 물량 감소는 서울 아파트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9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8월 대비 35% 급감했고 주간 아파트 변동률 역시 하향 안정이 되고 있지만 서울 아파트시장의 안정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최근 물량 앞에 장사가 없다는 공식이 깨졌다. 2008년 잠실 일대 엘스 등 2만여가구의 아파트가 동시에 입주하면서 1년 정도 강남권 매매, 전세가 약세였고 2019년 송파 가락시영을 재건축한 헬리오시티 9천510가구가 입주할 때도 전용 84㎡ 전세가 4억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1만2천가구 물량 폭탄을 예상했던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의 입주가 다가왔음에도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전세나 월세가 올라가고 있다. 서울 전체적인 입주 물량 부족, 실거주 의무 3년 유예와 조건부 전세대출 시행의 정책 실수까지 더해지면서 임대보다 직접 입주하겠다는 집주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아파트 가격을 보면서 더 늦으면 영원히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힌 매수자들보다 입주 물량 부족, 전셋값 상승, 금리 인하 등을 생각하면 호가를 내릴 이유가 없다면서 버티는 매도자들이 심리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 이런 살얼음판 위에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 주거문화를 넘어 신분 계급이 돼버린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수요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저출산, 서울 집값, 지방 침체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이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서울 과밀화 집중화다. 좋은 교육환경과 우수한 주거 인프라, 양질의 일자리를 지방으로 나눠 주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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