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천불 소득! 백억 수출!’ 을 아십니까?

이호경 경기도새마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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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 소득! 백억 수출!’

 

60대 이상이면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내내 들었던 구호일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만 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온 국민의 하나 같은 염원이었다. 사회지도층에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다수 국민은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치던 시절이었다.

 

1972년 11월7일 박정희 대통령은 ‘월간 경제 동향 보고’에서 1981년 1인당 국민소득을 1천불로, 그리고 1980년에는 1백억불 수출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1977년 12월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불을 돌파했습니다.” 온 나라가 흥분에 빠졌다. 수출 100억불, 쉽게 믿기지 않을 숫자였다.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던 1962년의 수출액은 5천만달러였고 1964년에야 1억달러를 달성했다. 10억달러를 넘은 것은 1970년의 일이었다. 10억달러에서 100억달러가 되는 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이 걸렸다. 우리는 불과 7년이 걸렸다. 100억달러 돌파는 ‘한강의 기적’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날 이렇게 말했다. “이 기쁨과 보람은 결코 기적이 아니요, 국민 여러분의 고귀한 땀과 불굴의 집념이 낳은 값진 소산이며, 일하고 또 일하면서 살아온 우리 세대의 땀에 젖은 발자취로 빛날 것입니다.” 축하의 표시로 광화문 네거리에는 ‘100억불 수출의 날’이란 대형 아치가 세워졌다.

 

수출 1백억달러 달성에 뒤이어 1978년 새해에는 대망의 1천달러 소득이 실현됐다. 1978년 1인당 GNP(국민총생산)는 1천50달러, 1975년 500달러를 돌파한 이래 3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쾌속의 고도성장을 지속했다. 처음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던 60년대 초 연평균 성장률 7% 목표에 대해서조차 무리한 계획이라며 많은 논란이 있었고 70년의 10억달러 수출 목표 자체도 그 당시에는 실현하기 어려운 꿈으로 여겼던 일이었다. 일부에선 공허한 선전이라고 여겼으나 수출과 1인당 국민소득은 모두 목표보다 4년이 앞당겨진 1977년 성취됐다. 이는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1인당 GNP가 1천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은 우리 경제도 중진국 대열에 진입함을 뜻하며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먹고 입는 문제는 우선 해결했다고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좁은 섬나라 같은 국토, 빈약한 자원, 긴 겨울, 많은 인구, 전쟁으로 파괴된 산하 등을 가르치고 배웠다. 이러한 절망적 환경은 수출만이 살 길이었다. 시작된 산업화는 외자 투자유치, 인력 개발, 국제경쟁력 강화 등의 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그저 가발과 인형 수출 등으로 초라하게 출발했다. 공장에서는 ‘QC(Quality Control·품질관리)’, ‘공장 새마을운동’ 등으로 불량을 몰아내고 품질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면서 국제표준에 맞추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국민의 ‘마이 홈’과 ‘마이 카’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져만 갔던 시절이다.

 

드디어 2023년 말 국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3천745달러로 일본을 추월했다고 한다. 경천동지, 격세지감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 같다. 말로만 하는 반일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 준 극일을 이룬 것이다. 우리는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수출로 먹고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누구도 우리를 영원히 지켜줄 수는 없다. 스스로 힘으로 이뤄내고 지켜내야 할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3만달러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모으면 4만달러 고지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 ‘트럼프 2.0’이 우리의 수출길을 불안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생긴다. 우리에게는 ‘천불 소득, 백억 수출’의 비전을 기억하며 선진국에 안착할 수 있는 또 다른 도전에 대한 비전과 목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철저한 대비만이 우리가 이룬 것을 지켜내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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